저 꽃속에 찬란한 빛이 / 박경희
어둠에 묻혀
흘러간 그 세월의 눈물은
사랑을 잃어
흩어진 옛 추억의 그림자
잊을 수 없어
미련에 사무치던 슬픔은
상처로 아픈
내 가슴 깊은 곳의 그리움
다시 한번 돌아오라
눈물없던 시절
그 노래여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거리
꽃피는 마음에 열리는 꿈길
사랑의 기쁨이 샘솟는 곳에
행복의 날개여 활짝 펴라
어둠에 묻혀
흘러간 그 세월의 눈물은
사랑을 잃어
흩어진 옛 추억의 그림자
잊을 수 없어
미련에 사무치던 슬픔은
상처로 아픈
내 가슴 깊은 곳의 그리움
다시 한번 돌아오라
눈물없던 시절
그 노래여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거리
꽃피는 마음에 열리는 꿈길
사랑의 기쁨이 샘솟는 곳에
행복의 날개여 활짝 펴라
라~ 라~ 라~라~
라~라~라~라~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거리
꽃피는 마음에 열리는 꿈길
사랑의 기쁨이 샘솟는 곳에
행복의 날개여 활짝 펴라
박경희(朴京姬.1950∼2004.8.9) 1951. 6
경상남도 창원 출생. 1974년 한국가요제 대상 수상곡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로 가요계에 데뷔한 뒤 일본 도쿄 야마하 국제가요제 입상, 도쿄가요제 동상, TBC 세계가요제 최우수 가창상을 받는 등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매너로 국제가요제 전문가수로 이름을 날렸다.
쉐라톤워커힐호텔 전속가수로 활동하면서 포퓰러뮤직을 즐겨 불렀다. 일선 가수생활을 접은 뒤에도 경남 창원에서 주부가요 노래교실을 운영하는 등 줄곧 음악과 함께 해 온 그는 2004년 6월 윤시내, 정훈희 등과 함께 KBS '가요무대' 국제가요제 특집 공연에 참가해 다시 대중들 앞에 선 것이 마지막 공연이 되고 말았다.
대표곡으로는 <저 꽃속에 찬란한 빛이>를 비롯해 <머무는 곳 그 어딘지 몰라도>, <나 이제 여기에> 등이 있다.
일본 도쿄 야마하 국제가요제 입상, 도쿄가요제 동상, TBC 세계가요제 최우수 가창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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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꽃속에 찬란한…'' 가수 박경희씨 별세> - [세계일보](2004. 8. 10)
‘저 꽃속에 찬란한 빛이’를 부른 가수 박경희(사진)씨가 9일 오전 11시4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3세.
박씨는 1974년 한국가요제 대상 수상곡 ‘저 꽃속에…’로 가요계에 데뷔한 뒤 일본 도쿄 야마하 국제가요제 입상, 도쿄가요제 동상, TBC 세계가요제 최우수 가창상을 받는 등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매너로 국제가요제 전문가수로 이름을 날렸다.
대표곡으로는 ‘저 꽃속에 찬란한 빛이’를 비롯해 ‘머무는 곳 그 어딘지 몰라도’, ‘나 이제 여기에’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사별한 남편 사이에 둔 딸이 있다. 빈소는 경남 창원병원 영안실 4호.
<박경희씨 별세에 동료가수 "큰 별 잃었다"> - 동아일보(2004. 8. 10)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난 외롭지 않다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 날이/ 빨리 왔을 뿐이네.’
자신의 대표곡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의 후렴구처럼 9일 53세의 나이에 우리들 곁을 ‘빨리’ 떠나버린 가수 박경희씨.
지난 6월 21일 방영된 KBS ‘가요무대’에서 고인과 마지막으로 함께 노래했던 동료 가수들은 갑작스런 부고를 듣고 놀라워했다.
당시 함께 출연해 <공연히> <열애> 등을 열창했던 가수 윤시내씨는 10일 “언니는 늘 명랑하고 성격도 시원시원해 내가 많이 따랐다”며 “건강한 모습으로 노래한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이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아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정훈희씨도 그게 그와 함께 선 마지막 무대였다니 기가 막히다며 애석해했다.
“70년대 당시 국내 가요계는 트로트와 발라드 두 장르로 나뉘어 있었고 경희와 나는 몇 안 되는 팝 스타일의 가수였어요. 경희는 체격도 크고 생김새도 서구적인데다 목소리에 볼륨감이 있어 무대가 꽉 차는 느낌이었죠. 최근에 가수로 다시 활동하겠다고 의욕이 대단했는데….”
워커힐호텔 전속 가수로 듀엣 ‘카펜터스’나 탐 존스의 팝송을 즐겨 불렀던 고인은 김기웅 작곡의 <태양의 노래>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 노래가 바로 74년 제1회 한국 국제가요제 대상곡인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다. 당시 가요제에 출전하면서 가요제 출품작답게 제목을 길게 고쳤던 것.
고인은 마지막 무대가 된 ‘가요무대’ 녹화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데뷔할 때 패티 김 선배처럼 ‘○○ 박’ 하고 예명을 지으려 했는데 마땅한 영어 이름이 없어 그냥 본명을 쓰게 됐다”는 후일담도 들려줬다. 가요평론가 임진모씨는 “가수 박경희는 패티 김 계열로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대동해 부르는 스탠더드 팝의 계보를 잇는 대형가수였다”며 “70년대 가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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