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대중가요,가곡

아침이슬 – 양희은

청가헌 (聽可軒) 2022. 3. 20. 11:20

아침이슬 / 양희은     (1971)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성명     양희은 (楊姬銀)

출생     1952813(69)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구 가회동

본관     청주 양씨 (淸州 楊氏)

신체     A

학력     서울재동국민학교 (졸업)

           경기여자중학교 (졸업)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서강대학교 심볼 서강대학교 (사학 / 학사)

소속사  옹달샘엔터테인먼트

데뷔     1971'아침 이슬'

가족     아버지 양정길, 어머니 윤순모

           여동생 양희경, 양희정, 조카 한승현

배우자  조중문

종교     대한성공회

■상세

중후한 성량, 노년 여성의 이상적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음색을 가졌다.[8] 여기에 본인의 곡들도 가사 하나 하나가 연륜을 담고 있어 청자들의 감성을 금방 끌어낼 수 있는 가수. 특히 노래로 구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대한민국에서 따라올 가수가 없다. 엄마의 입장으로 부르는 노래도 몇 곡 가지고 있으며, 워낙 음색이 노래의 감수성과 잘 맞아떨어져서 방송에 출연해 "엄마가 딸에게"[9]를 불렀을 땐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특징으로는 친한 손윗남자들을 ''이라고 부른다는 것. 사실 1990년대 초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에서 여자 후배가 남자 선배에게 ''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종[10], 운동권의 경우에는 흔하게 있었던 일이었다. 사실상 운동권에서 유행시킨 말. 사실 한국어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님', '어머님', '언니', '', '누나', '오빠'와 같은 친족 단어들은 원래 실제 혈연 친족 관계에서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부터 하나씩 비혈연 관계에도 사용되기 시작한다. 20세기 초반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빠져나온 게 시작이었고, '오빠'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쯤 가장 나중에 빠져나왔다. 그래서 지금도 50~60년대 출생자들 중, 여자가 나이 많은 남자친구에게 '오빠'하고 부르는 걸 "자기 오빠도 아닌데 왜 오빠냐 부르냐"고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여동생은 배우 양희경과 심리학자 양희정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에 서울 YMCA가 운영하던 청소년 쉼터 "청개구리"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양희은의 음악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인 김민기였다. 김민기가 없었다면 현재의 양희은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육군 대령이었으나, 39세의 나이로 일찍 사망하고 어머니가 보증을 잘못 선데다가 어머니의 가게인 양장점이 홀라당 타버리는 바람에 집안이 기울어 대학시절 끼니는 물론이고 교통비조차 없어서 걸어다녔다고 한다.[11] 이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해야만했고 무대에 올려 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이 바로 송창식이었다. 송창식은 자신이 노래를 부르던 명동의 맥주집에 데리고 가서 자신의 공연시간 10분을 떼주면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놀러와 설날 특집 세시봉 콘서트때 양희은이 직접 언급. 송창식에게 '형 저 노래 하고 싶어요' 라고 하자 송창식이 '노래 하고 싶어?' 라고 묻고는 자신이 공연하던 맥주집에 데려가서 자기 공연시간의 일부를 때줘 무대에 세워줬다. 받아준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양희은은 맹랑하게 사장에게 가불을 부탁했고 4만원을 받아냈다. 당시 국립대학교 한학기 등록금이 7천원이었다. 사장이 엄청난 대인배였던 셈. 물론 송창식을 믿고 내준 게 더 컸겠지만. 사람 추천 안하기로 유명한 송창식이 추천한 사람은 양희은이 최초라고 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19월에 발매된 양희은의 첫 정규앨범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을 냈는데 여기에 수록된 김민기의 "아침 이슬""세노야"는 양희은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 되었다.

하지만 아침 이슬이 금지곡이 되면서 그녀의 노래들도 덩달아서 금지곡이 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녀의 대표곡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못 이루어지냐라는 황당한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 "작은 연못"의 경우는 김종필과 이후락의 권력다툼을 비꼬았다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돼버렸다. 무려 30여곡의 노래가 금지곡이 돼버렸으니... 이때는 별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금지를 먹이는게 허다했다. 송창식의 "왜 불러"만 해도 사용된 영화에서 청년 둘이 장발 단속을 피해 튀는 장면에서 나와서 공권력을 조롱한다는 이유로 금지를 먹었던 시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1975년에 정부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 가수상을 수상했다. 70년대 후반에 이주원과의 공동작업으로 나온 "한 사람", "들길 따라서", "네 꿈을 펼쳐라" 등은 주옥같은 곡들로 평가받는다.

1981년에 한국을 떠나서 1년여간 미국과 유럽 등을 여행하고 돌아왔지만 이듬해인 1982년에 그녀는 난소암 진단을 받고 인생의 중대 기로에 서게 되었다. 2번에 걸쳐 암수술을 받았고 투병 생활[12]을 하는 등 인생의 굴곡이 많았다. 여동생인 양희경은 직접 옆에서 병간호를 했으며, 병고로 겨우 신음소리만 내는 그녀의 모습에 "정말로 언니가 죽는 줄 알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일로 자식을 가질 수 없게 되었지만, 남편과 강아지들을 자식 삼아 키우며 긍정적으로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1985년에 발표한 하덕규 작곡의 "한계령"은 뛰어난 곡으로 평가를 받았다. 발표 당시에는 너무 무거운 분위기라 음반사가 홍보를 포기해버렸지만 1990년에 다시 발표했을때 큰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마지막 편인 "한계령"이 바로 이 노래에서 제목을 따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양희은의 금지곡들은 모두 해금조치 되었고 뛰어난 뮤지션으로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데뷔 30주년을 맞아 30주년 기념음반과 콘서트를 가졌고 2011년에는 데뷔 4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뮤지컬 "어디만큼 왔나"20118월 중순까지 공연하였다.

1집과 20주년 기념앨범은 각각 67위와 91위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다.

포크 가수로 유명한 편이지만 의외로 신중현과 협업하면서 사이키델릭 포크를 시도하기도 했다.[13]평은 좋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갔는지 묻혔다. 리뷰 2010년 시점으로도 이 음반은 60만원을 호가하는 희귀 음반이다.

가수 경력 뿐만 아니라 라디오DJ로서도 전설적이다. 젊은 시절부터 CBS, TBC 등에서 팝 음악방송 DJ를 했을만큼 방송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1992년에 다시 CBS로 돌아와 "양희은의 정보시대"를 진행했고 SBS에서 "두시의 친구 양희은입니다"1998년까지 진행했으며 손숙의 뒤를 이어서 1999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MBC 표준FM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이런 경력에도 불구하고 MBC 라디오에서는 타 방송사의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아 MBC 라디오 명예의 전당인 골든마우스에서 브론즈 마우스(10년차 이상) 시상에 그쳐야 했다.

아직도 목소리에 힘이 가득하기로 유명하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목소리가 매우 힘차고 또렷해서 듣기만 해도 양희은임을 알아챌 수 있다. 다만 동생도 목소리가 매우 비슷해 속기 쉽다. 물론 양희경이 좀더 나긋나긋하지만 양희경이 작정하고 따라하면 친척도, 지인도 구분이 어렵다. 심지어 둘의 모친도 목소리가 둘과 같아서 가족들과 모친의 지인들이 많이 속는다고 한다. 어 순모니? 아뇨. 그럼 희은이? 아뇨 저 희경이에요.

2014년 윤종신과의 <배낭여행> 작업을 시작으로 '뜻밖의 만남'이라는 후배 음악인들과의 프로듀싱 음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적, 이상순, 성시경 등 현재까지 9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새로운 변화를 성공적으로 시도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여담

유행어로 "너 이름이 뭐니?"가 있다. 이것을 뜨게 하는 데 공헌한 사람이 슈퍼주니어의 이특. 이특이 "전 살찐 여자가 싫어요."라고 하자 발끈한 양희은이 "너 이름이 뭐니?"라고 한 데서 명대사가 나왔다. 그 이전에도 이 유행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이유는 진짜로 신인급 연예인들의 이름이 궁금해서다. 그런데 히든싱어5에서 출연해서 한 이야기에 따르면 이 대사는 사실 이보다도 한참 옛날 80년대 후반 쯤에 이성미가 아침 프로그램 리포터를 하던 시절에 양희은이 방송국 복도에서 이성미를 보자 '너 이름이 뭐니? 너 쪼끄만 애 일로 와봐' 이러면서 집으로 데려가서 집밥을 먹일때도 썼던 걸로 보아 예전부터 쓰던 표현인 듯하다. 대선배가 애정을 담아서 한 물음이지만, 너라는 표현 때문에 희화화되었다. 영어의 you와 달리 님 문서만 봐도 모르는 사람을 너라고 부르기 힘든 사회다보니... 물론 절친한 박미선 등에 따르면 건방지거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봤을 때도 튀어나온다고 한다... 말버릇인 듯하다. 어쨌든 그 뒤로 양희은하면 자동으로 이 말이 떠오르는 형편이 되어서 아예 신한금융투자 광고에서 대놓고 이 대사를 사용했다. 참고로 양희은의 팬클럽 이름도 이 유행어를 딴 "왓추어네임"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양희은이 들고 나온 고민은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는 것이었다. 방송에서 고백하기를 '라디오는 24시간이라도 하라면 하겠으나 카메라는 울렁증이 있다'고 하였다. 이 방송에서 양희은은 지나온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을 많이 털어놓았다. 이 문서에 작성된 내용 중 상당히 많은 내용도 당시 촬영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카메라 울렁증" 자체는 어느 정도 사실인 거로 보이며 실제로 그녀는 라디오, 혹은 콘서트 7080처럼 노래 무대에 좀 더 집중하는 면을 보인다.

다큐멘터리 3일에서도 내레이션을 하는데, 한번은 12일에서 은지원이 34일 동안 낙오되었을 때도 그 촬영분 내레이션을 했다.

여동생인 양희경은 중견배우로 활동한다. 양희경 역시 후덜덜한 노래 실력을 가졌으며 뮤지컬 넌센스 등에도 출연했다. 양희은 씨가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생기면 대타로 출연하는데, 애청자들조차 잘 구분하지 못할 만큼 목소리도 비슷하다.

가끔 웃는 모습이 왼쪽 입꼬리가 크게 올라간 비웃는 모습이라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은 뇌질환(본인피셜 소아마비)을 생후 1년째 안면신경마비를 겪은 후유증이 왼쪽 얼굴에 남아서 그런 것이다. 얼굴이 비대칭으로 반쪽 얼굴에 마비가 온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0대에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아 시한부 인생을 살며 사경을 해맨 적도 있다.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긴 했으나 병의 후유증으로 불임이 됐다. 그 이후에 현재의 남편인 조중문씨와 결혼하여 강아지를 자식처럼 대하며 산다고 한다. 당시에 항암 치료를 거부하며 '살 사람은 안해도 살고 죽을 사람은 해도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

난소암으로 투병중이었는데 1983년에 "하얀 목련"을 내고 다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난소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일 당시, 청계천에 양희은의 앨범이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양희은이 수소문해 알아보니 당시 꽤 유명한 음반 도매상이 '양희은 난소암 판정, 전집 판매' 현수막을 걸고 음반을 팔고 있었던 것. 이에 화가 난 양희은이 사람이 아픈걸 홍보 수단으로 쓸 수 있냐고, 이럴 수가 있냐고 따졌더니 그 도매상이 '억울하면 신곡 발표하든가'라고 응수, 그래서 이 곡으로 다시 복귀한 것이라고. 원래는 다른 가수에게 갔으나 거절당한 노래에 가사를 다시 붙여서 발표했다고 한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기회가 된다면 나오고 싶다고.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저 가순데요 뭐. 그리 닫혀 있지는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바로 '데뷔 40년차 가수'를 제작진이 마음 편히 탈락시킬 수 있겠냐며 실제로는 힘들지 않겠냐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경력이 비슷한 인순이가 출연한 것을 보면 가능성은 있을 듯.[21]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환영한다와 너무 올드해서 별로일 것 같다는 두 의견으로 갈렸다. 하지만 정작 시즌3까지 진행되도록 양희은이 출연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제작진이 부담감에 섭외를 안한 듯.

논스톱에서 양동근의 친척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양동근이 장나라에게 평소 도움을 많이 받는 캐릭터인데, 장나라가 알바하던 카페에 때마침 가수가 필요하자 그 은혜를 보답할 겸 자기 친척이랍시고 부른 사람이 바로 양희은이다. 양희은 역시 같은 성씨의 양동근을 평소에 눈여겨 보았고 뉴논스톱에서 양동근의 시그니처인 "한 턱 쏴!!"를 하기도 했다.

결혼식 사진이 공개되면서 구원파 관련 인물이 여럿 있다는 게 밝혀지자 구원파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최근 들어 안티가 생긴 듯 하다.

2014년에 "뜻밖의 만남" 이란 주제로 싱글곡들을 발표하였다. 후배 뮤지션이 만든 노래를 양희은이 부르는 것으로 10월에 윤종신이 만든 노래 "배낭여행"을 발표했고 11월에는 이적이 만든 노래 "꽃병"을 발표했으며 20152월에는 이상순(밴드 롤러코스터(밴드)의 기타리스트)이 만든 노래 "산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54월 발표한 "엄마가 딸에게"[22]는 직장인밴드 동물원 멤버였던 김창기의 이야기(친딸에게 못한 이야기, 병원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한)를 바탕으로 1절을, 2절은 양희은 씨가, 타이미가 랩가사를 썼다고 한다.#

20141119, <2014 양희은>을 발표하며 재즈를 시도했다. 동생 양희경, 불독맨션의 이한철, 인디 보컬 그룹 바버렛츠, 장미여관의 육중완 등이 앨범에 참여했다. 타이틀곡인 '나영이네 냉장고'는 김나영의 에세이 수필집 '마음에 들어'의 수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리고 수록곡 '나영이네 냉장고'로 데뷔 후 44년 만에 뮤직 비디오를 찍었다. 뮤직비디오에는 김나영, 장미여관, 김준호, 김숙이 출연하였으며, 감독은 송은이가 하였다. 참고로 KBS에서는 특정 냉장고 브랜드 노출을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샘표 연두 광고에도 나왔는데, 양념을 많이 뿌리는 출연자를 질타하기도 했다. 미역편 시금치편

한식대첩 시즌2 반갱편의 특별 심사위원으로 나왔으며 충청남도의 음식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냉장고를 부탁해 24, 25회에 출현했다. 냉장고 공개는 25. 웬만한 레스토랑 수준의 집밥과 반찬 만드는 데 일가견 있다는 이야기가 연예계에 알려져 있다는 만큼 어마어마한 냉장고가 공개됐다. 직접 담그고 만든 각종 밑반찬들과 여러 귀한 식재료가 가득한 냉장고였고 덕분에 셰프들이 밥 데워서 반찬 먹방에 정신없었다. 그만큼 양희은의 음식에 대한 지식이 높아서 다른 게스트와 달리 여유있게 셰프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벌어진 최현석과 이연복의 빅매치는 냉장고를 부탁해 프로 전체에서 손꼽히는 백미.

앨범과 뮤직비디오의 인연이 된 장미여관의 리더 육중완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 주기로 했다고 나 혼자 산다에서 밝혔다. 참고로 육중완은 <2014 양희은>에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말'을 작곡했는데, 자기가 만든 곡들 중 최고의 역작을 양희은 선배님께 드렸다고 밝히며 선배 양희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근래 라이브 무대에서 과거 히트곡보다는 <2014 양희은>이나 <뜻 밖의 만남 프로젝트>에서 발표한 신곡들을 많이 부르는 편인데, 옛 곡들도 좋지만 과거곡 위주로 부르면 사람들이 옛 모습만을 기억하게 되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 같아 그렇게 한다고 밝힌다. 이는 양희은의 대표곡 '아침 이슬'을 썼던 김민기(가수)와 비슷한 성향. 자주 출연하는 콘서트 7080이나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신곡을 자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6년에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 아침 이슬, 엄마가 딸에게 등을 부르며 청춘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엄마가 딸에게>[23]는 박규리가 아닌 악동뮤지션과 듀엣을 불렀다. 이 무대로 다시 화제가 되며 시청자들을 울음바다로 만들었고, 방영일 이후에도 검색어와 인기영상에서 오르내렸다.

2016918일 추석특집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했는데 여기서 전인권과 상록수를 부르며 역대급 무대를 만들었다.

201611265차 촛불시위에서 깜짝출연하여 아침 이슬,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를 불렀다.

동생 말로는 젊었을 적에는 잘 생겼었다고.

공식적인 라인은 아니지만 양희은의 밥라인이 있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박미선, 이성미, 송은이, 김영철, 김신영 등등. 김영철의 성대모사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한 방송에 출연해서 같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을 부르기도 했다.

2018730일에 브이앱 채널을 개설했다.

히든싱어 시즌3 왕중왕전에서 게스트로 나왔으며 이 당시에 자신의 모창자를 기다리겠다고 직접 언급해서 모창자만 모인다면 출연할 것으로 보인다. 시즌2부터 모창능력자를 모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반인이 그녀의 모창을 따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시즌4 쯤에는 출연이 성사될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모창자가 모이지 않았는지 불발되었다가 시즌 5 10회에서 원조 가수로 나왔다. 모창자들을 압도할 것이라는 예상대로 1R에선 시즌5 최초 0표를 달성했지만, 2R12표나 받으면서 1등도 놓쳤다(!)[스포일러]. 하지만 3,4R에서는 역시나 가뿐하게 1등을 차지했다.

2019126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출연하여 인터뷰했다.

짱구는 못말려 SBS버전 6'엄마와 아빠의 과거' 시리즈 첫번째 편에서 양희은이 70년대 대표가수로 로컬화 되었고 짱구아빠 신형만(성우 오세홍)'네 꿈을 펼쳐라'를 잠깐 불렀다. 실제로 7080을 상징하는 가수이니 적절한 현지화의 사례다.

이성미가 양희은에게 크게 혼난 사건이 있다. 양희은이 속풀이쇼 동치미에 나갔을때 이성미도 있었고 그때 푼 이야기인데 이성미가 언제 한번 밥 먹자고 해서 연락을 기다렸는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서 서운함에 혼냈다고 한다.

미미와 보보라는 이름의 퍼그 종 두 마리를 키웠는데 앨범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둘이 떠난 이후에도 같은 이름들로 푸들을 키우고 있다.

60대 후반의 나이인지라 B4, C5, C#5 음역대가 힘겨워 보인다. 상록수는 원곡이 A키에 최고음이 C#5이지만 몇년 전부터는 G키로 낮춰 부르고 있고, 아름다운 것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원래 C키인데 B플랫으로 낮춰서 부르고 있다. 아직 아침이슬은 원키로 부르고 있다. 다만 이는 나이가 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불가피한 부분이고, 무리하게 원키를 고수하기보다 현재 목소리에 맞는 키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

세바퀴 여성 고정 출연자들[28]의 단톡방이 있어 매일 연락하고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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