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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 Eric Clapton

청가헌 (聽可軒) 2022. 6. 25. 14:14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 Eric Clapton (1970. remake) 

Once I lived the life of a millionaire,
Spent all my money, I just did not care.
Took all my friends out for a good time,
Bought bootleg whisky, champagne and wine. 
 

Then I began to fall so low,
Lost all my good friends, I did not have nowhere to go.
If I get my hands on a dollar again,
I'm gonna hang on to it till that eagle grins. 


'Cause no, no,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In your pocket, not one penny,
And as for friends, you don't have any.


When you finally get back up on your feet again,
Everybody wants to be your old long-lost friend.
Said it's mighty strange, without a doubt,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When you finally get back upon your feet again,
Everybody wants to be your good old long-lost friend.
Said it's mighty strange,
Nobody knows you,
Nobody knows you,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나 한땐 정말 떵떵거리고 잘 살았어
돈을 펑펑 쓰면서 눈 하나 깜짝 안했지
친구들 다 데리고 다니면서 신나게 놀았고
밀주 위스키와 샴페인, 포도주를 사 마셨지


그러다 완전 빈털터리가 되기 시작했는데
그 많던 좋은 친구 다 잃고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어
만일 내게 다시 1달러라도 생긴다면
마르고 닳도록 쓰지 않고 아낄 거야

사람이 몰락해버리면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아는 체 안하니까
주머니 속에 땡전 한 푼 없으면
친구, 그런 것도 하나 없게 되니까

그러다 마침내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되면
모두가 다 오래 잊고 지낸 옛 친구라고 해대고
그야말로 정말 참 묘하지 
사람이 몰락하면 아무도 아는 체 하지 않으니

그러다 마침내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되면
모두가 다 오래 잊고 지낸 옛 친구라고 해대고
정말 참 묘하지 
아무도 아는 체 않으니
아무도 아는 체 않으니
사람이 몰락하면 아무도 아는 체 하지 않으니

 

에릭 클랩튼 (2015년)

  • 본명  에릭 패트릭 클랩튼(Eric Patrick Clapton)
  • 출생  1945년 3월 30일 잉글랜드 서리주 리플리
  • 국적  영국
  • 직업  음악 프로듀서, 기타리스트
  • 장르  록, 블루스
  • 악기  기타, 보컬
  • 활동   1962년 ~ 현재
  • 배우자 멜리아 맥에너리(2002 ~ )

                패티 보이드(이혼, 1979 ~ 1988)

  • 종교   성공회

생애

  • 에릭 클랩튼은 1945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킹스톤 미술대학을 다니다가 음악에 심취해 학업을 포기하고 그룹 루스터스(The Roosters)에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후 케이시 존즈 앤 디 엔지니어즈(Casey Jones & the Engineers), 야드버즈, 블루스 브레이커스, 크림, 블라인드 페이스 등 수많은 그룹을 거치면서 연주 경력을 쌓으며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

 

  • 1970년에는 데렉 앤 도미노스(Derek & Dominos)에 합류, 12월에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듀안 올맨의 도움으로 걸작 앨범 《Layla》를 발표했지만 대중들의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친구였던 듀안 올맨마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자 실의에 빠져 은둔 생활을 하면서 마약에 중독되기도 했다. 약 2년 동안 마약 중독으로 고생하던 에릭 클랩튼은 그룹 더 후의 피트 타운센드의 도움으로, 재기 앨범 《461 Ocean Boulevard》를 발표해 이전의 명성을 회복했다.

 

  • 1981년에 발표하였던 앨범 《Another Ticket》는 대히트를 거뒀고, 1982년 말에 발표한 《Money And Cigarettes》을 통해 에릭 클랩튼은 전곡을 작곡함으로써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우리나라에는 1991년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고, 그를 그리워하며 만든 〈Tears in Heaven〉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곡으로 그래미 6개 부분을 수상했다
에릭 클랩튼은 어느 누구보다도 다양한 음악적 경력을 써내려간 뮤지션이며 또 그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기타리스트로서의 영광 역시 다른 누구와 비교해도 우월하다. 2011년 「롤링 스톤」이 뽑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 순위에서 2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각종 조사에서 에릭 클랩튼은 언제나 상위 5위권 안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야드버즈(The Yardbirds)와 크림의 멤버로서, 또 솔로로서 세 차례나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그의 별명은 '기타의 신'이다.
1945년 영국 서레이주 리플리에서 태어난 에릭 클랩튼은 부모가 일찍 이혼하는 바람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부모로 잘못알고 삼촌을 형으로 여기며 성장했는데 일곱, 여덟 살 무렵 이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 등 당대를 주름잡던 록큰롤 스타들에 눈과 귀를 빼앗겨 버린 소년의 삶은 열세 살 때 2파운드짜리 독일제 호이어 기타를 선물 받던 순간 결정되었다.

이후 독학으로 기타를 익히고 스쿨밴드 등을 거치며 실력을 연마한 그는 1963년 그룹 야드버즈에 가담하면서 음악계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야드버즈 시절의 대표곡으로는 UK 싱글차트 3위, 빌보드 싱글차트 6위까지 올랐던 히트곡 〈For Your Love〉가 있다. 야드버즈는 라이브 위주로 활동한 밴드였는데, 당시 에릭 클랩튼은 1번 줄이 특히 가는 라이트게이지 기타 현을 썼다. 음을 벤딩하기 쉽게 할 목적이었지만 그러다보니 공연 도중 기타 줄이 끊어지는 일이 잦았다. 그 때마다 공연은 중단되었고 기타 줄을 갈아 끼우는 동안 관객들은 느리게 손뼉을 치며 기다리곤 했는데, 이를 본 매니저 조르조가 'Slowhand Clapton'이라는 말을 떠올렸고 그 후로 슬로우핸드는 에릭 클랩튼의 가장 유명한 별명이 되었다.

1965년 에릭 클랩튼은 야드버즈를 떠나 존 메이욜스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s Bluesbreakers)에 가입했다. 갈수록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야드버즈의 음악성에 실망을 느끼고 있던 차에 당시 영국 블루스록계의 리더 격이던 존 메이욜의 제의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유혹이었을 것이다. 사실 위에서 말한 〈For Your Love〉 녹음 당시에도 에릭 클랩튼은 중간의 겨우 8마디 블루스 리프를 연주했을 뿐이었고 마음은 이미 야드버즈를 떠나 있었다.

하지만 블루스브레이커스 시절 역시 그리 길지는 않았다. 이 시기의 대표 앨범으로 사실상 에릭 클랩튼이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작품인 「Blues Breakers : John Mayall with Eric Clapton」(1966)이 발표된 것도 실은 이미 그가 밴드를 떠난 후였다. 아무튼 이 앨범은 에릭 클랩튼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데,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깁슨 레스 폴 스탠더드 기타와 마샬 앰프의 조합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런던 거리에 '클랩튼은 신이다'(Clapton is God)라는 문구가 나붙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1966년 블루스브레이커스를 떠난 에릭 클랩튼의 다음 선택은 크림이었다. 베이스의 잭 브루스, 드럼의 진저 베이커(Ginger Baker)와 함께 했던 크림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3인조 밴드로 꼽히는데, 1967년 앨범 「Disraeli Gears」의 수록곡 〈Sunshine of Your Love〉와 1968년 앨범 「Wheels of Fire」에 수록된 〈White Room〉이 그룹의 양대 히트곡으로 꼽힌다.

1969년 에릭 클랩튼은 다시 크림을 떠나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결성했다. 크림의 동료 진저 베이커와 그룹 트래픽(Traffic)을 이끌던 스티브 윈우드 등이 함께 했던 블라인드 페이스는 결성 당시 슈퍼그룹으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역시 단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내고 단명하고 말았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3인조 밴드로 평가받는 '크림'

에릭 클랩튼은 오랜 시간 약물과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했고 병원과 재활시설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그의 경력에는 자주 공백기가 나타나고 발표하는 음악의 수준과 완성도에서도 시기마다 편차를 보인다. 하지만 최소한 대중적 성공이라는 척도에서 그의 전성기는 아마도 1990년대 초반이 될 텐데 여기에도 또 한 번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MTV 언플러그드 공연으로 재기에 성공하며 그래미를 거머쥔 에릭 클랩튼

필생의 연인 패티 보이드와 이혼한 에릭은 이탈리아 여행 도중 만난 여인 로리 델 산토(Lory Del Santo)와 사랑에 빠졌고 둘 사이에서 아들 코너(Cornor Clapton)가 태어났다. 코너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극진했는데, 1991년 3월 20일 비극은 다시 한 번 그를 덮쳤다. 아들 코너가 뉴욕 맨해튼의 53층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절망에 빠졌지만 이를 이겨내고 〈Tears in Heaven〉을 발표했고 이 노래는 그에게 화려한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1991년 영화 [Rush]의 삽입곡으로 처음 선보인 〈Tears in Heaven〉은 1992년 MTV 언플러그드 공연에서 연주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에릭 클랩튼은 이듬해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주요 세 개 부문을 포함한 여섯 개 부문을 석권함으로써 음악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에릭 클랩튼은 깁슨 레스 폴 기타를 가장 애용했지만 펜더 계열의 기타도 자주 사용했는데, 그가 사용한 기타 가운데는 오히려 펜더 기종이 더 많다. 1999년 에릭 클랩튼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기타 가운데 100대를 골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부쳤다. 자신이 설립한 재활센터인 크로스로즈 센터를 운영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 날 행사에서는 총 445만 2천 달러가 모아졌는데 토바코 선버스트 컬러의 1956년형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는 무려 49만 7천 5백 달러에 팔려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것이 바로 〈Layla〉를 연주할 때 사용한 것으로 '브라우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유명한 기타이다.

기록을 다시 깬 것 역시 에릭 클랩튼 자신이었다. 2004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검은색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는 무려 95만 9천 달러에 팔려나가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블래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기타는 1956년 경 에릭 클랩튼이 여러 개의 기타 부품을 손수 조립해서 만든 수제품으로 「Slowhand」 앨범 녹음 당시 사용했던 명기였다. 한편 이 날 경매에서는 그가 야드버즈 시절부터 연주했던 체리레드 깁슨 ES-335가 84만 7천 5백 달러에 팔려 깁슨 기타로는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브라우니, 블래키, 깁슨 ES-335

에릭 클랩튼은 로버트 존슨과 버디 가이, 프레디 킹 등 많은 전설적인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의 영향을 받아 블루스에 기반을 둔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지만 스스로 가장 많이 영향 받은 인물로 꼽는 것은 두 사람이다. 먼저 머디 워터스, 그는 에릭에게 근원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함께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에릭을 직접 가르쳤는가 하면 언제나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또 한 명은 비비 킹이다. 에릭 클랩튼은 그에게 로버트 존슨의 환생이 아닐까 한다는 찬사를 바치며 블루스가 배출해낸 최고의 블루스맨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에 대한 존경심은 2000년 에릭 클랩튼이 비비 킹을 초빙해 만든 앨범 「Riding with the King」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에릭 클랩튼, 그의 기타는 화려하진 않지만 결코 느리지 않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그가 연주하는 모습은 항상 느리고 여유로워 보인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슬로우핸드'라는 별명은 원래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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