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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elds of Gold - Eva Cassidy

청가헌 (聽可軒) 2022. 7. 4. 16:28

Fields of Gold / Eva Cassidy (remake) 

You'll remember me when the west wind moves
Among the fields of barley
You can tell the sun in his jealous sky
When we walked in fields of gold


So she took her love for to gaze awhile
Among the fields of barley
In his arms she fell as her hair came down
Among the fields of gold


Will you stay with me will you be my love
Among the fields of barley
And you can tell the sun in his jealous sky
When we walked in fields of gold


I never made promises lightly
And there have been some that I've broken
But I swear in the days still left
We will walk in fields of gold
We'll walk in fields of gold


I never made promises lightly
And there have been some that I've broken
But I swear in the days still left
We will walk in fields of gold
We'll walk in fields of gold


Many years have passed since those summer days
Among the fields of barley
See the children run as the sun goes down
As you lie in fields of gold


You'll remember me when the west wind moves
Among the fields of barley
You can tell the sun in his jealous sky
When we walked in fields of gold
When we walked in fields of gold
When we walked in fields of gold

 
그댄 날 기억하게 될 거예요
보리밭 사이로 서풍이 불어오면
시샘하는 하늘의 태양에게도 말해줄 수 있을 거예요
언제 우리가 황금빛 들녘을 거닐었는지


그녀는 사랑을 안고 와 한동안
보리밭 사이를 바라봤어요
머리카락을 황금빛 들녘에 늘어뜨린 채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어요
 

내 곁에 있어줄래요, 내 사랑이 되어줄래요
보리밭 한가운데서
시샘하는 하늘의 태양에게도 말해줄 수 있을 거예요
언제 우리가 황금빛 들녘을 거닐었는지


난 절대 가볍게 약속한 적이 없어요
약속을 어긴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맹세해요. 아직 남아 있는 날들 동안
우리 황금빛 들녘을 걸을 거라고
우리 황금빛 들녘을 걸을 거라고


난 절대 가볍게 약속한 적이 없어요
약속을 어긴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맹세해요. 아직 남아 있는 날들 동안
우리 황금빛 들녘을 걸을 거라고
우리 황금빛 들녘을 걸을 거라고


보리밭 한가운데서의 그 여름날들 이후
여러 해가 지났어요
태양은 지고 아이들 뛰는게 보여요
당신은 황금빛 들녘에 누워 있고


그댄 날 기억하게 될 거예요
보리밭 사이로 서풍이 불어오면
시샘하는 하늘의 태양에게도 말해줄 수 있을 거예요
언제 우리가 황금빛 들녘을 거닐었는지
언제 우리가 황금빛 들녘을 거닐었는지
언제 우리가 황금빛 들녘을 거닐었는지

 

  • 본명 에바 마리 캐시디
  • 출생 1963년 2월 2일, 미국 워싱턴 DC
  • 사망 1996년 11월 2일 (33세) 미국 메릴랜드주 보위
  • 장르 재즈, 블루스
  • 직업 가수, 기타리스트
  • 악기 보컬, 기타, 피아노
  • 활동 1981-1996
 

■.33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Eva Cassidy(에바 캐시디)] 미국 워싱턴시 근교의 보위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난 에바 캐시디는 두살 때 그림을, 아홉살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녀는 거기서 얻을것이 없다는 판단하에 고등학교를 자퇴하였다. 이후에 그녀는 낮에는 보육원 정원사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이 사는 주변의 풍경을 그리며 생활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수줍음 잘타는 성격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는 하였지만 그녀는 죽기전까지 노래를 부를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어려움을 뛰어넘을수 있게하는 열망이 있었다. 모두가 기존에 발표되었던 다른 사람들의 곡이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그 곡들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노래하고자 하는 열망이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 열망을 충족시켜줄 재능도 있었다.

 

그녀의 매니저가 데모 테이프를 가지고 몇번 문을 두드렸던 메이저 레이블에서는 너무 다양한 레퍼토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자신의 노래의 가치를 인정해주었던 몇 명의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워싱턴시의 조그만 레이블에서 생전에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다. 1992년에 워싱턴 지역의 R&B 베테랑 뮤지션 [Chuck Brown(척 브라운)]과의 듀오 앨범 [The Other Side]가 발매됐다. 거의 4년 후 사망하기 몇달 전에 두 번째 앨범 [Live At The Blues Alley]가 선을 보인다. 이 앨범으로 그녀는 사후 한달 후에 열린 워싱턴시 주최 음악 시상식에서 올해의 아티스트와 올해의 앨범을 수상. 사후 1년 1997년에 발표된 미발표 스튜디오 레코딩 [Eva By Heart]와 1998년 발표된 [Songbird]를 통해서 그녀의 이름은 조금씩 알려지게 된다. 이전까지 발표된 석 장의 앨범에서 선곡한 베스트 앨범 형식의 [Songbird]는 특히 2000년 봄에 영국에 발매되면서 [Eva Cassidy]의 존재를 극적으로 부각시킨다.

 

그리고 2000년 5월에 다시 [Eva Cassidy]의 미발표 레코딩을 모은 앨범 [Time After Time]이 발매된다. [Eva Cassidy]의 노래가 알려지게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그녀의 앨범을 소개 받고 바로 그 노래에 매혹된 BBC 라디오의 한 프로듀서에 의해 처음 전파를 탄 노래들은 그 어느 곡보다도 많은 리퀘스트와 문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곡이기도한 [Over The Rainbow]는 각별한 사랑을 받아서 BBC 청취자가 뽑은 20세기의 노래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BBC 라디오에서 제작해 방송한 다큐멘터리, 12월 말에 영국의 [Top Of The Pop 2]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라이브 비디오 클립 [Over The Rainbow]를 통해서 [Eva Cassidy]의 이름은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후에 그녀의 노래들이 TV의 자선 기금 마련 프로들이나 기아에 관한 뉴스등에 자주 깔리게 되면서 그녀의 노래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더욱 깊어 갔고 결국 그녀의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1위에까지 오르게 된다.

 

미국에서도 그녀의 인기는 서서히 올라갔는데 그녀에대한 9분짜리 취재물이 라디오 방송국 NPR에서 방송되면서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의 12월 20일자 베스트 셀러 차트에서는 5위 안에 전부 넉 장의 앨범이 오르기도 한다. 1위 [Songbird], 2위 [Live At Blues Alley], 4위 [Time After Time], 5위 [The Other Side] 순이었고 3위에 홀로 [The Beatles(비틀즈)]의 [1]이 올라있었다. [Sting(스팅)]이 '내 노래를 정말 아름답게 불러주었다 그렇게 순수한 목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고 극찬했던 [Fields Of Gold]가 특히 미국에서 사랑 받았다. 영국의 음악방송에서는 '이 시대의 목소리'라고까지 하였다고 한다.

. 어린 시절

1963 2 2일 워싱턴 DC의 워싱턴 병원 센터에서 태어난 캐시디는 메릴랜드 주 옥슨 힐과 이후 메릴랜드 주 보위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네 자녀 중 셋째였다. 그녀의 아버지 Hugh Cassidy는 교사, 조각가, 음악가, 전 육군 의무병,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혈통의 세계 챔피언 파워리프터 이며 그녀의 어머니 Barbara Bad Kreuznach 출신의 독일 원예사 이다. 캐시디는 어려서부터 예술과 음악에 관심을 보였다. 그녀가 9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기타 연주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녀는 가족 모임에서 연주하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11세 때 Cassidy Easy Street라는 워싱턴 지역 밴드에서 노래와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이 밴드는 결혼식, 기업 파티, 펍에서 다양한 스타일로 공연했다. 그녀의 수줍음 때문에 그녀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Bowie High School에 다니는 동안 그녀는 Stonehenge라는 지역 밴드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1983년 여름 동안 캐시디는 테마파크 와일드 월드에서 일주일에 6일 노래와 기타 연주를 했다. 그녀의 남동생인 바이올린 연주자 댄 도 이 밴드의 멤버였다. 그녀는 Prince George's Community College의 미술 수업에 등록했다. 그러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탈락했다.

 

1980년대 내내 Cassidy는 테크노 팝 밴드 Characters Without Names를 비롯한 여러 다른 밴드와 작업했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식물 종묘장에서 번식가와 가구 화가로도 일했다. 그녀는 여가 시간에 그림, 조각 및 보석 디자인을 포함한 다른 예술적 표현을 탐구했다.

질병과 죽음

1993년 캐시디는 등의 악성 점을 제거했다. 3년 후, 1996 7 Live at Blues Alley 앨범 프로모션 행사에서 Cassidy는 엉덩이에 통증을 느꼈다. 통증이 지속되었고 엑스레이에서 골절이 발견되었다. 추가 검사에서 암이 그녀의 뼈와 폐까지 전이되어 골절을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그녀의 의사들은 그녀가 3~5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추정했다. 캐시디는 적극적인 치료를 선택했지만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9 17일 바이유에서 열린 그녀를 위한 자선 콘서트에서, 그녀는 가족, 친구, 팬들 앞에서 'What Wonderful World'로 촬영장을 마무리하며 마지막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추가 화학 요법은 효과가 없었고 캐시디는 1996 11 2 일 메릴랜드 주 보위에 있는 가족의 집에서 흑색종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뜻에 따라 그녀의 시신은 화장되어 메릴랜드 주 캘러웨이 인근의 자연 보호 구역인 세인트 메리 강 유역 공원 호숫가에 흩어졌다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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