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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art Of Glass - Blondie

청가헌 (聽可軒) 2022. 2. 17. 20:34

Heart Of Glass / Blondie  (1979)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다양한 장르로 빌보드 1위 타이틀을 수차례 거머쥔 전설의 밴드가 있었다. 바로 블론디이다. 데비 해리(Debbie Harry. 1945~)와 크리스 스타인(Chris Stein. 1954~)이 주축이 되어 1974년 결성된 펑크락 그룹인 블론디.

 

처음에는 The Angel and the Snake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이름을 블론디로 교체하게 된다.

바로 멤버들과 차를 타고 가다가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한 트럭기사가 데비 해리에게 그녀의 금발머리를 가리켜 Blondie라고 하면서 야유를 보냈고 멤버들은 여기에 착안해 밴드명을 간단한 Blondie로 바꾸게 된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미국에서 인정을 받지는 못하지만 1976년 데뷔 앨범을 내놓은 이후, 주로 호주와 유럽, 영국에서 인기를 얻게 된다. 그 이유는 그녀의 독특한 사진발과 투톤으로 염색한 금발머리 때문이었는데, 이에 힘입어 그녀는 곧 펑크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나 초기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에 멤버들도 자신들의 노래가 어떤 장르인지, 어떤 성격의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짓지를 못할 정도였다.

미국 밖인 영국과 호주에서 바람몰이를 해서 미국 본토로 상륙하게 되는데, 바로 Heart Of Glass가 1979년 빌보드 Hot 100주간 차트 1위를 하게 된다. Heart Of Glass는 원래 이들의 세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Parallel Lines에 수록되었다가 1979년 1월 싱글로 발표되면서 대히트를 친 노래이다.

 

1979년이면 디스코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로, 이 영향을 받아 블론디 역시 디스코풍이 가미된 곡을 만들수 밖에 없었다. 물론 Heart Of Glass는 1975년 Once I Had a Love라고 불린 데보버전으로 초기 곡이 구상되었다.

 

기본적인 디스코비트가 바탕이 되고 좀 펑크락 스타일이 가미된 곡이었다. 그러나 Rock the Boat(1974) 등 다른 곡들의 영향을 받았다.

 

발매당시 7인치 싱글 LP와 12인치 싱글 LP로 발매되었는데, 7인치 버전은 3분 22초. 12인치 버전은 5분 50초로 좀 더 긴 Extended Version이었다. 그리고 Heart Of Glass는 블론디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하며 빌보드 첫 1위의 영예를 안겨다 주었다. 음반 판매량은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백만장 이상 팔려나갔다.

차트 기록도 훌륭해 빌보드 Hot 100 1위는 물론, UK싱글차트 1위, 뉴질랜드, 스위스, 독일, 캐나다 탑 싱글즈, 캐나다 댄스/어번 차트, 캐나다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1위를 차지하였으며 연간기록으로도 빌보드 18위에 오를 정도로 상당히 많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Heart Of Glass의 대성공으로 블론디는 언더그라운드 펑크락 밴드에서 일약 메인스트림으로 급부상하였으며, 데비 해리는 펑크의 대표 아이콘으로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이 유명세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앤디 워홀과 같이 사진 등 예술작품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기도 하였다.

한때 다른 가수들과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일부 팝 매거진, 음악 잡지의 기자들에 의해 데비 해리 VS 크리시 하인드(프리텐더스), 혹은 데비 해리 VS 올리비아 뉴튼 존의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물론 그들은 서로를 라이벌로 여기지 않았다. 발표하는 음악의 성격도 달랐기 때문이다.

 

Heart Of Glass의 성공 이후, 블론디의 노래들은 이후 1982년 해체할때까지 빌보드 1위를 많이 장식하였다. The Tide Is High, Call Me,등 좋은 음악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론디 하면 Heart Of Glass가 가장 먼저 연상되는데,

 

이를 통해서 메인스트림에 올랐고, 이를 통해서 미국과 유럽, 호주를 넘어서 일본, 한국등 동아시아에도 팬층을 확고하게 확보하는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1979년은 디스코 음악의 황금기로 마치 약속이나 한듯 1980년이 되자마자 디스코 열풍이 사그라들었고 그 전년도에 1위 차트를 기록했던 많은 아티스트들이 다시 1위에 이름을 랭크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 살아남아 81년까지 1위를 지속적으로 랭크시켰다는 점은 블론디가 얼마나 시대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고, 그에 맞게 노래의 성격을 바꾸는 능력이 탁월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1980년 앤디 워홀과도 많이 작업을 하면서 했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앤디 워홀이 내게 가르쳐준 것 중 가장 최고의 것은 항상 새로운 것, 새로운 음악, 새로운 스타일, 새로운 밴드들, 새로운 기술등에 대해 열려 있는 것이다. 절대로 과거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나이가 얼마나 되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라”

 

이를 잊지 않았고 치열한 경쟁속에서도 1982년 해체할때까지 이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