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fin' U.S.A / Beach Boys
If everybody had an ocean across the U.S.A
만약 모두들이 미국 전체에 걸쳐 넒은 바다를 가질수 있다면
Then everybodyd be surfin's like California
모두들 파도타기를 할텐데 캘리포니아에서 처럼
You'd see'em wearing their baggies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는 그들을 볼 거에요
Huarachi sandals too
후라아치 샌들을 신고
A bushy bushy blonde hairdo surfin' U.S.A
헝클어진 금발머리를 하고 미국 전체를 파도타러
You'll catch'em surfin' at Del Mar
델마에서 파도타는 그들을 볼 수 있을 거에요
Ventura county line Santa Cruz and Tressels
벤츄라 군 경계선을 따라 산타 크루즈와 트레슬스에서도
Australia's Narabine all over Manhattan
호주의 나라빈에서도 맨하탄 전역에서도
And down Doheny way
도히니 해변을 따라
Everybody's gone surfin' surfin' U.S.A
모두가 파도를 타러 갔어요 미국 전체를 파도타러
We'll all be planning that route
우리 모두 여행을 떠날 계획이에요
We're gonna take real soon
우리는 곧 떠날 거에요
We're waxing down our surfboards
우린 써핑 보드에 광을 내고 있어요
We can't wait for June
6월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We'll all be gone for the summer
여름 내내 가 있을 거에요
We're on safari to stay
파도 타기 여행을 다닐 거에요 Tell the teacher we're surfin' surfin' U.S.A
선생님께 우린 파도타러 갔다고 말해줘요 미국 전체를 파도타러
Haggarty's and Swamies, Pacific palisades
해거티스와 스와미스, 퍼시픽 팰리세이즈
San O'nofre and sunset Redondo beach L.A
샌 오노프리와 선셋 로스 앤젤레스의 리단도 비치
All over La Jolla at Waimia Bay
라 호야 전역에서 그리고 와이메아 만에서
Everybody's gone surfin' surfin' U.S.A
모두가 파도를 타러 갔어요 미국 전체를 파도타러
60년대를 풍미했던 [Beach Boys(비치 보이스)]는 [Surfing(파도타기)]를 좋아하는 십대들의 무대였던 캘리포니아 [Hawthorne(호손)]에서 결성된 전형적인 섬머타임 밴드로서 미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하나의 이디엄으로 남아있는 그룹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장수그룹 [Beach Boys]는 60년대 미국 음악계에서 모타운 사운드와 함께 양대산맥을 형성했던 서프 뮤직을 대중화시켰다. 다분히 [Chuck Berry(척 베리)]로 부터 영향을 받은 이 그룹은 열정적인 하와이언 기타선율을 앞세운 신명나는 로큰롤을 주조해냈다. 이들이 주로 노래했던 대상은 캘리포니아 해변에서의 서핑과 달콤한 사랑 이야기였다. 산뜻하고 유쾌한 이들의 음악은 기성세대의 귀로 부터 자유롭고 싶어했던 젊은 세대들로 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Beach Boys]는 61년 [Brian Wilson(브라이언 윌슨, 키보드, 베이스)], [Carl Wilson(칼 윌슨, 기타)] 그리고 [Dennis Wilson(데니스 윌슨, 드럼)], [Mike Love(마이크 러브, 보컬, 색소폰)], [Al Jardine(알 자딘, 기타)] 이렇게 세명의 형제와 한명의 사촌, 학교친구로 구성되었다.
[Wilson] 삼형제는 주말마다 여행을 떠나는 부모님이 음식을 사먹으라고 준 250달러를 즉시 악기를 빌리는데 사용하였고 이러한 음악적 관심과 열의는 이들의 음악적 소양을 길러 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Beach Boys]의 다섯명은 모두 악기를 다룰줄 알았고 보컬실력 또한 뛰어나서 이들의 보컬 하모니는 보컬 하모니를 강점으로 활동하는 여타의 흑인 그룹들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이었다. 악기를 연주하고 곡을 쓰며 흑인들 빰치는 완벽한 보컬하모니 까지 갖춘 그룹은 당시로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특히 그룹의 리더로서 작곡, 프로듀스, 편곡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히트곡 제조기 [Brian]에 의해 하모니와 음악성이 다듬어지고 빛을 발하게 된다. 1962년에는 [Surfin']을 발표하였다. 파도타기 광이었던 [Dennis]의 제안으로 [Brian]과 [Mike Love]에 의해 만들어진 히트곡 [Surfin']은 [Chuck Berry] 스타일의 밀어 붙이는 로큰롤 리듬과 복잡하고 정교한 보컬 하모니와 재미있는 백 코러스의 조화로 새로운 미국의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서프사운드는 남 캘리포니아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Surfin']이 L.A 지역에서 차트 2위까지 오르면서 이들은 메이저 레이블인 캐피톨 레코드와 계약을 하게 된다. 캐피톨은 이들에게 [Surfin']과 똑같은 스타일의 곡들을 만들어 내기를 원했다. [Beach Boys]는 그들의 첫 번째 앨범 [Surfin' Safari]를 시작으로 이후 2년 동안 무려 일곱장의 서프 앨범을 발표한다. [Surfin' U.S.A], [Surfer Girl], [Little Deuce Coupe], [The Beach Boys Concert], [Shut Down], [All Summer Long]등이 그 당시에 그들이 발표한 앨범들이다. 1963년 3월 발표된 앨범 [Surfin' U.S.A]에 실린 동명의 타이틀곡 [Surfin' U.S.A]는 그들의 첫 번째 톱텐 히트곡이 되었고 앨범 역시 골드를 기록하게 되었다. 전작을 내놓은지 불과 4개월만에 발표한 [Surfer Girl] 역시 톱텐 히트와 골드레코드를 기록했다. 당시 [Brian]은 [Beach Boys]의 거의 대부분의 곡들을 작사, 작곡했고 이들은 이 와중에도 공연을 계속해서 하는등 거의 초인적인 음악 활동을 벌인다. [Surfer Girl]이 발표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들의 네 번째 앨범 [Little Deuce Coupe]를 발표했고 이 앨범 역시 밀리언 셀링을 기록하며 이들의 지칠줄 모르는 창작열과 인기에 부합하는 결과를 만들어 주었고 명실공히 [Beach Boys]의 황금시대를 영위하게 된다.
사실 당시에 음반을 만드는 일이 아무리 지금보다 간단하다고 해도 이 정도로 앨범을 제작하고 발표하는 것은 그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물론 앨범을 한 달 걸러서 혹은 몇 개월 단위로 낸다는 것이 꼭 바람직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노래를 부르기만 하는 그룹이 아닌 곡을 만들고 악기 연주까지 하는 그룹이 계속해서 공연을 하면서도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앨범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음악적인 재능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1964년초 이들은 소위 [British Invasion(브리티시 인베이전)]라 불리는 영국 음악의 침공을 보게 된다. 그 선봉에 선 그룹이 바로 [Beatles(비틀즈)]였다. [Beatles]의 미국 침공은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Beach Boys] 역시 이러한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이들은 차츰 [Beatles]에게 커다란 경쟁심을 갖기 시작한다. [Beatles]의 미국 침공이 대단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인기를 주춤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이들은 [Beatles]의 침공이 있었던 1964년에 [When I Grow Up(To Be A Man)], [Fun, Fun, Fun], [Dance, Dance, Dance]등을 톱텐에 랭크시켰고 [I Get Around]로 차트에서 처음으로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세 장의 앨범 [Shut Down], [All Summer Long], [The Beach Boys Concert]가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는등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전적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강행군은 [Brian]을 결국 지치게 만들었고 1964년말 [Brian]은 [Beach Boys]를 일시적으로 탈퇴하게 된다. 그의 후임으로 [Bruce Johnston(브루스 존스톤)]이 가입했고 1965년 넘버원 싱글 [Help Me Rhonda]가 포함되어 있는 앨범 [The Beach Boys Today]를 발표한다. 그리고 넉달 후 여덟 번째 골드 앨범이자 너무나도 유명한 톱 텐 히트곡 [California Girl]이 들어 있는 앨범 [Summer Days]를 발표하게 된다. 이로서 [Beach Boys]는 초창기에 그들이 들려주었던 단순한 10대 찬가의 음악에서 훨씬 성숙한 음악으로의 진보를 이루어 냈다. 이러한 변화는 [Beatles]의 영향이 가장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장기인 서프 뮤직을 중도에 포기하게 된다. 바로 [Beatles]가 1965년에 공개한 걸작 중의 걸작 [Rubber Soul] 때문이었다. 이 앨범은 오빠 부대를 몰고다니는 10대 밴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Beatles]를 아티스트로 만들어 주었던 앨범으로 그동안 사랑타령 일색이던 [Beatles]의 가사는 추상적이고 은유적으로 인생과 자기성찰을 꾀하고 있었고 사운드 면에서도 필 스펙터의 사운드를 흡수하여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던 앨범이었다.
특히 리더 [Brian]은 서프 뮤직은 물론 모든 록 장르를 시범한 [Beatles]의 음악에 전율을 느꼈다. [Brian]이 신경쇠약 증세로 그룹을 잠시 떠났을때 그는 서프 음악과의 결별을 다짐하였고 그는 새로운 변신을 위해 작곡과 편곡 그리고 사운드 녹음에 집착했었다. 이러한 그의 집착의 결과는 1966년 4개월 동안의 실험 끝에 오케스트라 세션이 동원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대작 [Pet Sounds]에서 고스란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뛰어난 악기 편성과 음향 효과로 [Beatles]의 제작자 [George Martin(조지 마틴)]과 [Phil Spector(필 스펙터)]에 버금가는 실력을 인정받았던 [Brian]은 앨범 [Pet Sound]로 1인 오케스트라 체제의 제작 기법을 구현해내기도 했다. 이들이 록 역사의 전설로 기록되고 있는것은 [Pet Sounds]가 있기 때문이다. [Paul McCartney(폴 매카트니)]가 1967년에 팝 사상 최고의 명반인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만든 후 만약 [Pet Sounds]가 없었더라면 이 앨범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실토했을 정도다. 사실 [Beach Boys]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던 이 앨범은 엄밀히 말해 [Brian]의 솔로 앨범이라고 할만큼 그의 개인적인 색깔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 있던 작품이다.
이 앨범에서 그는 더빙을 반복하여 사운드를 보다 두껍게 만들었고 종소리, 경적소리등 여러가지 효과음을 사용하는등 사운드에 대한 여러가지 실험을 하여 스튜디오가 하나의 음악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이 앨범은 [Sloop John B], [Wouldn't It Be Nice]등의 톱 텐 히트곡을 만들었으나 이전에 발표된 [Beach Boys]의 음반만큼의 대중적인 반응을 보이지 못하였고 판매고도 올리지 못했다. 이 앨범으로 [Beach Boys]는 서프 음악으로 반짝 인기를 얻었던 그룹이 아닌 록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그룹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앨범 이후 [Beach Boys]는 [Good Vibrations(66)]라는 넘버원 히트곡을 발표했다. [Brian]은 다시 경쟁상대인 [Beatles]에 대응할만한 대작으로 [Smile]이라는 타이틀의 앨범 작업에 들어 갔지만 심각한 신경 쇠약과 약물 과용에 따른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Smiley Smile(67)]이라는 이름의 다른 앨범이 제작되는 불운을 맞이한다. 그러던 중에 순수한 팝 음악을 지향하는 [Beach Boys]의 다른 멤버들과 대작만을 고집하는 [Brian] 사이에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게 되었고 그들의 음악은 더 이상 결속력과 중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Wilson]가의 막내인 [Dennis Wilson] 역시 결혼 실패등으로 고통을 받았고 [Mike Love]는 명상 철학에입문하는등 그룹은 갈팡질팡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기는 했으나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까지 그들이 발표했던 음반들은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이렇다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1969년 4월 1일 [The Beach Boys]는 그들의 레코드사인 캐피톨 레코드사에 소송을 걸었다. 밴드의 주 작곡자 [Brian]에게 로열티와 프로듀스에 대한 지불을 포함 200여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편 독자적인 레이블 브라더스 레코드의 출발을 선언하였다. 이것은 아티스트가 음반사를 소유한 최초의 선례였다. 그러나 멤버들의 개인사 및 종교문제, 건강문제가 겹쳐 60년대 후반 이후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Dennis]의 활약으로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앨범 [Sun Flower(70)] 이후에는 멤버 각자 저마다의 역량을 최대한도로 발전시켜 나갔다. 1973년 이후에는 별다른 신곡 작업없이 빡빡한 투어 일정속에 스스로를 던져넣었다. 초기 히트곡들을 편집한 [Endless Summer(74)], [Spirit Of America(75)]로 한때나마 재기의 길을 걷는듯 했다. 1970년에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 참가하는등 꾸준하긴 하지만 의욕적이지는 못한 활동을 벌이며 이들의 전성기가 지났음을 증명하는 70년대를 보낸다.
1976년 3년만에 발표한 스튜디오 앨범 [15 Big Ones]는 [Brian]이 10년만에 프로듀서로 제작한 앨범으로 [Chuck Berry]의 고전을 리메이크 한 [Rock And Roll Music]이 톱 텐에 랭크되면서 그들의 부활이 실현되는듯 했으나 [Brian]의 갑작스런 탈퇴로 인한 그룹 내부의 충돌과 여러가지 잡다한 외부사업의 문제로 인해 혼란이 계속되어 이 후에 발표한 앨범들은 다시금 실패의 연속이되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멤버들의 솔로 활동이 이어졌다. 그러나 [Brian]의 부재와 1983년에 막내 [Dennis]의 갑작스런 익사사고등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밴드는 핵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Beach Boys]의 부활은 완전히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였다. 1985년 발표한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노장의 건재함을 알렸지만 역시 신세대 팝 팬들에게 그들의 존재감을 재인식시킨 것은 영화 칵테일 주제가로 차트 정상에 오른 [Kokomo] 였다. [Kokomo]가 빌보드 차트 넘버원이 되면서 다시 적극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듬해에는 [Mel Gibson(멜 깁슨)]과 [Danny Glover(대니 글로버)] 주연의 미국 영화 리셀 웨폰 2의 주제곡인 [Still Cruisin']과 삽입곡으로 [Somewhere Near Japan]등이 포함된 앨범 [Still Cruisin']을 발표하여 영원히 죽지않는 백전노장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90년대에 들어서 [Brian]의 두 딸인 [Carnie Wilson(카니 윌슨)과 [Wendy Wilson(웬디 윌슨)]이 [The Mamas and Papas(마마스 앤 파파스)] [John Phillips(존 필립스)]의 딸인 [Chynna Phillips(차이나 필립스)와 함께 그룹 [Wilson Phillips(윌슨 필립스)]를 결성해 차트에서 맹위를 떨칠때에도 베스트 앨범으로 동시에 차트에 랭크되어 있을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며 30년이 넘어가도록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팝 팬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멤버 [Carl Wilson]이 1998년에 암으로 사망하고 [Brian]이 다시 솔로를 선언하는가 하면 [Beach Boys] 자체도 이제는 [Mike Love]가 영도하는 오리지널 팀과 [Al Jardine]이 이끄는 [Beach Boys] 패밀리 체제로 양분되어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비록 현재까지도 크리스마스 앨범, 히트곡 편집앨범, 박스 세트 등을 발매하며 꾸준히 순회공연을 하고는 있지만 [Beach Boys]는 이제 거의 이름뿐인 그룹이 되어버렸다. 아직까지 팝계에 흔적을 남기고 있긴하지만 새로운 앨범 활동은 하지 않는 소위 한물간 그룹이라 할지라도 밝고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로 60년대 로큰롤 그룹중 유일하게 [Beatles]와 경쟁하며 음악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던 [Beach Boys]는 미국 팝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그룹이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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