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찬양,클래식

주님의 숲 - CCM

청가헌 (聽可軒) 2022. 3. 18. 16:46

주님의 숲 / CCM

어느날 문득 당신이 찾아온
푸르른 저 숲 속에
평온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당신이 지나온 이 거리는
언제나 낯설게 느껴
그 어디에도 평화 없네
참 평화 없네
그렇지만 당신의 앞에 펼쳐진
주님의 숲에
지친 당신이 찾아온다면
숲은 두팔을 벌려
그렇게도 힘들어했던
당신의 지친 어깨가
이젠 쉬도록 편히 쉬도록
여기 주님의 숲에 우
어느날 문득 당신이 찾아온
푸르른 저 숲 속에
평온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당신이 느꼈던 지난날에
슬픔의 기억들은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또 생각하네
그렇지만 당신의 앞에 펼쳐진
주님의 숲에
지친 당신이 찾아온다면
숲은 두팔을 벌려
그렇게도 힘들어했던
당신의 지친 어깨가
이젠 쉬도록 편히 쉬도록
여기 주님의 숲에 우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 기독교 음악)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해 1970년대 이후 세계로 확산된 기독교 음악 또는 그러한 음악 운동을 통틀어 일컫는다. 가사에 기독교 믿음을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는 현대 대중음악의 한 장르. 찬송가와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찬송가는 예배에 사용되는 전례용 음악이고, CCM은 전례에 사용하지 않고,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담은 대중음악이다. 더 확실하게 정의하자면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진 국내.외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빌보드지는 크리스천 앨범/크리스천 송으로 분류하며, 그리고 라디오 앤드 레코드 지는 크리스천 AC[1], 크리스천 CHR[2], 크리스천 록, 영감적인 곡[3]으로 분류, 아이튠즈 스토어는 크리스천과 가스펠(Christian & Gospel) 장르로 분류한다.

 

한국에서는 역사가 길지 않고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아직 명확한 정의가 통용되고 있지 않은데[4], 보통 대중음악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용 면에서는 기독교(주로 개신교 계열)의 정신을 담아내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기독교 음악[5]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좁게는 현대의 찬송가 정도로 이해되는 경우도 많으나, 음악적으로 찬송가와 CCM은 장르 자체가 다르다. 찬송가는 바흐 코랄 등을 통해 만들어진 전통적인 화성의 교회 음악이나 유럽의 전통 민요 가락을 기반으로 한다.  19-20세기의 미국의 복음 성가들도 대부분 전통 화성에 맞게 편곡된 것들이라 CCM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지저스컬쳐

1960년대 암울했던 미국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발생한 히피문화는 자유분방한 문화와 생활방식을 추구하였다. 그 매력에 급속도로 확산되었지만 미국 사회의 변화와 히피문화 자체의 무질서함 등 다양한 이유로 쇠퇴할 때[7], 그 히피문화에 대한 반동으로 1960년대 말에 발생한 예수운동(Jesus Movement), 히피들이 내세우던 철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희망이 있음을 주장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그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히피들이 록 음악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담아서 전했던 것과 같이 자신들도 록 음악이나 팝 음악에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아서 전파하기 시작했고, 이런 움직임은 지저스 뮤직(Jesus Music) 혹은 지저스 록(Jesus Rock)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 즈음, 전통적인 음악만 연주하던 교회 안에서도 현대적인 음악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생겨났고, 전술한 지저스 뮤직 운동과 융합되며 현대의 CCM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가톨릭의 경우,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과 더불어 미국에서 통기타로 반주하면서 성가를 부르는 이른바 포크 성가들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이 이어져 오늘날 중고등부나 청년 미사에서 밴드로 반주하며 봉헌하는 미사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1. CCM의 뜻은?동시대(Contemporary)적인 크리스천(Christian)들의 음악(Music)
C : contemporary adj 그 당시의 ; 같은 시대의 ; 동시대의CCM을 규정짓는 첫번째 기준으로 시대성을 나타낸다. 이 시대성은 가변성을 가지며 그 시대의 유행, 생활양식을 포함한다. 현시점에서의 contemporary는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지금의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지금을 말하는 것으로 이 개념은 CCM을 규정짓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몫을 한다. contemporary라는 개념은 요즘시대에 불려지고 들려지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하나의 단어로써 묶어 내는 것으로 이 단어로 인해서 CCM의 많은 장르들이 존재하는 데 힘을 실어 주게 된다.C : christian만일에 두번째 이니셜인 C가 크리스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CCM이라는 단어와 그것의 입지가 절대로 요즘과 같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시대적인 것(유행적인 것)에 충실하지만 두번째 개념을 충족하지 못하면 그 음악은 작곡가의 의도, 작사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반 대중음악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단어가 가지는 위치는 동시대의 모든 것들 중에서 christ, christian이 포함된 것을 말하며 예수가 포함된다는 것과 기독교인이 포함된다는 것에서 여러 가지를 파생시켜 낼 수 있다. 이 개념으로 인해서 복음성가와 가스펠의 개념이 CCM에 포함되게 된다.M : MusicCCM을 규정짓는 마지막 중요 키워드로써 뜻은 음악이다.
CCM이란 Contemporary한것들중에서 Christian이 포함된 것.. 또 그것들 중에서 음악을 말하는 것으로 혹자들은 새로운 대중문화라고 말하기도 하고. 크리스쳔들의 대중문화, 대중음악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직 개념이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예를 들자면 95년경 대중음악계에 "가사바꿔부르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고 "헤비스"라는 그룹이 그 당시 유행하던 10여곡을 가사를 바꿔 부른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유행이 교회 청년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한동안 대중음악(특히 가요)에 가사를 바꿔서 부른 적이 있었다.그 당시 이런 유행이 여러 가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지금까지도 일각에서 일고 있는 비판과 논쟁의 이유는 그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중음악 같은 연주에(Contemporary) 예수찬양과 하나님찬양의 가사(Christian)를 부쳐서 부르는 것(Music)"은 요즘 CCM이 사람들에게 인정되어 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과정이 되었다.어떤 이들은 "대중음악 같은 연주"라는 표현으로 인해서 CCM자체를 저속하게 생각하거나 싫어할는지도 모르지만 대중음악이라는 것이 워낙 광범위하기에 대중음악 같은 연주라는 표현 속에는 여러 유형의 연주형태가 들어 있다. 심지어는 혹자들이 상류층의 고급문화라고 여기는 클래식과 이해하기 힘들다는 난해함이 본토에서의 가치와 상관없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비싼 문화로 인식되어버린 재즈까지 말이다.2. CCM의 내용
'Christian Music'이라는 두 단어가 내용을 규정한다.
CCM에서 주로 다루는 가사의 내용은 4가지정도로 나눠진다.1)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간구하나님을 향한 사랑, 개인적인 고백들과 감사들을 음악의 가사로 사용하는케이스로 CCM중 30 ~ 40%정도를 차지한다.2) 복음3) 성도간의 교제성도간에 아름답게 있어야할 교제를 내용으로 한다.4) 도덕적인 권고남녀간의 순수한 사랑, 가정의 행복, 인류의 평화, 인종차별, 약물과 마약 등을 내용으로 한다
3. CCM의 장르
CCM에서도 찬송가로 불려지는 곡들을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앨범에 리메이크해 담고 있기 때문에 CCM과 찬송가가 무엇이 다른가 혼동하기도 한다. 사실 뚜렷하게 구별할 만한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다르다고 하기보다는 전통적인 찬송가를 어레인지를 통해 편대적으로 바꾸어 놓은것이 또한 CCM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다음의 분류표를 보자.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는 위와 같은 구분이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위와 같은 분류와 동시에 CCM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분류가 된다. CCM의 장르구분은 어느 협회에서 총괄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유행에 따라 조금씩 변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새로운 대중음악 CCM
1990년대 들어서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중에서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은 것이 있다면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줄여서 'CCM'으로도 불리는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말부터 우리나라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음악이 우리나라에 소개된지는 꽤 오래지만 그 용어가 쓰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크리스천 음악에 대한 용어의 개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우리나라에서는 CCM대신 '가스펠송'이란 말과 이를 번역한 '복음성가'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여왔다. 기독교음악 중에서 찬송가나 성가를 제외한 대중적 스타일의 음악을 '가스펠송' 또는 '복음성가'로 뭉뚱그려 불렀던 것이다. 언어는 이를 쓰는 대중들이 규정해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CCM이란 말이 대중음악계에서 확고한 장르로 자리잡은 바에는 우리도 용어를 구별하여 쓸 필요가 있다. 우선 CCM이 그동안 우리가 써오던 '가스펠송'이나 '복음성가'와는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기로 하자.CCM이란 말은 미국에서 들어왔다. 미국에서는 19세기부터 '가스펠송Gospel Song'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고 복음적인 내용을 담은 노래들을 '가스펠음악Gospel Music'으로 통칭해왔다. 그런데 흑인들이 흑인영가에서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켜가면서 보통 '가스펠'이라고 부르는 '블랙 가스펠Black Gospel'이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었다. 흑인들의 가스펠은 그 창법이나 음악스타일이 다른 장르와 확연하게 구분이 되었다.한편 백인들은 미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컨츄리풍의 '서던 가스펠Southern Gospel'을 오랫동안 발전시켜 왔는데 이 음악도 다른 장르와 구분이 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이 섞여 만들어진 록큰롤Rock'n' Roll이 등장하면서 기독교 관련음악에도 블랙 가스펠이나 서던 가스펠의 맥과는 다른 음악이 등장했다. 이 음악은 외양으로는 일반 팝음악과 구별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기독교적인 것을 다루었다. 이 음악이 바로 CCM이었다. 처음엔 이 음악이 예수음악Jesus Music, 또는 지저스록Jesus-rock으로 불렸다. 일반음악계에서는 이런 음악을 '가스펠' 또는 '인스피레이셔널Inspirational', '릴리져스Religious' 음악으로 분류하다가 1970년대말부터 '컨템퍼러리 크리스천'이라는 용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찬송가풍의 음악과는 뭔가 다른 음악을 하나의 흐름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미국의 대표적인 음반차트전문지인 [빌보드]를 보면 기독교관련음악으로 CCM과 가스펠의 두 차트를 두고 있다. [빌보드]는 CCM은 팝/록 계열의 음악을, 가스펠은 흑인전통 가스펠과 소울, 리듬 앤 블루스 스타일의 음악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CCM은 일반대중음악의 스타일을 똑같이 갖고 있으면서 내용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고 있는 음악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반 가요계의 입장에서 보아 스타일은 가요와 다를 바 없는데 내용은 기독교적인 것을 다루고 있는 음악을 '복음성가'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CCM과 우리나라의 복음성가는 같은 선상에 있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엔 복음성가라고 부르지 않고 CCM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많아진 것이다.CCM은 그 음악스타일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컨템퍼러리'하다. 요즘의 음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늘의 시대와 문화상황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문제가 심각한 미국에서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다같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내용을 담는 노래가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족통일을 이루어 한민족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파하려는 소망이 담긴 노래가 만들어진다. 2천년 전 예수님이 당시 상황에 비춘 여러 가지 비유를 하셨듯이 CCM도 오늘의 상황을 반영하여 기독교 진리를 전파하고 실천하려고 하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1960-70년대부터 미국에서 '가스펠송', '가스펠뮤직'을 들여오면서 이들을 '복음성가'라는 말로 정착시켰다. 하지만 '복음적인 내용을 담은 음악'으로서의 '복음성가'라는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적인 교회음악이나 성가와 대비되는 대중적인 기독교음악'의 뜻으로 일반인의 인식이 바뀌었다. 이렇게 개념인식이 바뀌었다면 '복음성가'라는 말보다는 CCM이란 용어가 더 알맞지 않은가 해서 1980년대말부터 CCM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CCM을 적절하게 우리말로 번역하지 못해 재즈, 팝, 록 등의 이름을 영어대로 쓰듯이 CCM도 그대로 쓰이게 되었다.CCM은 이제 차트로 구분될 만큼 일반화되버린 이름이기 때문에 굳이 용어사용을 배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포괄적으로 개념을 정리할 필요는 있겠다. 결론적으로 CCM은 첫째, 미국에서 흑인음악인 가스펠과 대비되는 크리스천 음악 즉 팝, 록 계열을 포함한 현대 대중음악스타일을 띤 크리스천 음악(그 가사가 영어이든, 독일어이든, 불어이든, 우리말이든 상관없이)으로 좁게 지칭할 수 있고 둘째, 본질적으로는 '주님의 말씀이 육화된 내용을 지니면서 요즘 시대의 음악흐름을 따라가는 음악'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가스펠뮤직의 간단한 역사
포괄적인 뜻으로의 가스펠 음악은 19세기말 미국에서 발전하였다. 가스펠 송이란 말은 19세기말 미국에서 처음 쓰였다. 1874년 당시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휘틀(D.W.Whittle 1840-1901)의 집회에서 찬송인도자로 활동하던 블리스Phillip Bliss에 의해서 출판된 노래모음집 [가스펠송]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가스펠송은 당시의 대중적인 부흥집회나 산과 들에서 열린 캠프집회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거나 구원에의 기쁨을 간증하며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개인적, 주관적으로 표현한 것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음악적으로는 명랑하고 민요적인 요소를 담은 세속적인 스타일이었다.당시에 불리던 가스펠송을 보면"하나님의 진리등대","이 몸의 소망 무엔가","저 죽어가는 자","저 장미꽃 위의 이슬","주 예수 내맘에 오신후","나 주를 멀리 떠났다","저기 갈보리산 험한 십자가는","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등필립 블리스Phillip Paul Bliss, 아이러 생키Ira Sankey, 윌리엄 커크패트릭William J.Kirkpatrick,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 등 당시의 유명한 가스펠송 작사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1920년경 가스펠송은 흑인영가와 재즈의 요소를 혼합하여 생기있고 더욱 힘찬 곡으로 변해갔다. 이런 음악은 후에 미국 북동부 흑인들 위주로 발전해나가면서 리듬앤 블루스, 소울 등의 요소를 가미하여 오늘날 좁은 뜻의 가스펠 음악이 되었다. 이를 밝혀 블랙가스펠이라고 부른다.한편 백인들 사이에서는 영국의 발라드나 민요를 바탕으로 컨츄리풍의 가스펠송을 발전시켜나갔는데 이 음악은 남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므로 서던 가스펠이라 불렸다. 백인들의 가스펠인 서던 가스펠은 1950,60년대의 주된 가스펠음악이었다. 백인들의 전통 가스펠이 록음악의 요소를 혼합하고 새로운 현대적인 다양한 음악요소를 받아들여서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으로 발전하게 된다.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
형식적으로 보면 가스펠 음악 역사중에서 1960년대 중반 이후가 바로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 시대이다.'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이란 용어는 1970년대 말부터 쓰여졌다. 그 이전까지는 '지저스 뮤직Jesus music'(예수음악),'지저스-록Jesus-rock'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크리스천 음악업계가 자리잡아가고 또 컨템퍼러리한 음악이 일반화되자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이란 용어가 정착된 것이다. 그래서 일반 팝계에서도 이 CCM이란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의 장르로 인정하게 되었다.미국의 종합 차트지인 [빌보드]의 예를 들어보자. [빌보드]는 대중적인 크리스천 음악을 '인스피레이셔널Inspirational'이란 장르로 따로 구분해놓았다가 1984년부터 이를 '컨템퍼러리 크리스천'과 '가스펠'의 두 갈래로 더 나누었다. 이때는 미국에서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지 5-6년 지난 후였다.사실 일반 팝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두 가지 장르는 음악스타일로는 일반 팝과 구분이 안되는 것이었다. 처음엔 '인스피레이셔널' 또는 '릴리져스Religious' 등으로 구분해서 형식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다른 음악과 구분될만큼 종교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으나 1970년대 말부터는 이들 음악이 점점 더 컨템퍼러리하게 되어 형식적으로는 일반 팝음악과 구별이 안되었다. 그러나 이런 음악이 뚜렷하게 한 무리를 이루면서 커나가고 있었기때문에 내용으로 구분된 장르가 형성된 것이었다.그러니까 빌보드 차트에 등장하는 음악은 팝/록/컨츄리/리듬 앤 블루스/메탈/클래식 등 음악스타일로 구분되지만 컨템퍼러리 크리스천은 랩이나 메탈을 포함한 팝/록 계열로 스타일로는 구분되지 않는 장르이다. 다시 말하면 빌보드 지에서 스타일보다는 내용으로 구분하는 유일한 장르인 셈이다.보다 더 자세히 나누자면 백인 위주의 음악인 팝/록/컨츄리/메탈/발라드/포크 등은 '컨템퍼러리 크리스천'으로 뭉뚱그려지고 흑인위주의 음악인 R&B, 소울 등은 '가스펠'로 뭉뚱그려진다. 그러니까 [빌보드]지의 구분대로 한다면 내용상 '가스펠 뮤직'인 장르는 두 가지, 즉 '컨템퍼러리 크리스천'과 '가스펠'이 있는데 '컨템퍼러리 크리스천'은 스타일상으로는 팝/록 계열이며 '가스펠'은 리듬앤 블루스/블랙 가스펠 계열인 것이다.그래미상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분류법에 따라서 '컨템퍼러리 팝 가스펠', '컨템퍼러리 록 가스펠', '컨템퍼러리 블랙 가스펠', '컨템퍼러리 소울 가스펠' 등 '컨템퍼러리'와 '가스펠'을 쓰고 있다.이렇게 CCM은 기독교음악 안에서는 스타일로 구분된 것이며 일반 대중음악에서는 내용으로 구별되어 지칭되는 이중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적인 대중음악이면 다 '가스펠송'을 우리말로 만든 '복음성가'라는 용어로 포괄한다. 그러나 국내 복음성가의 스타일을 보면 거의가 다 CCM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용어를 정리해야할까?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가스펠' 또는 '복음성가'로 알고 있는 음악을 새로운 용어 CCM으로 바꿔 불러야 할까? 아니면 사회적 공통인식대로 '가스펠' 또는 '복음성가'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우리만의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야 할까?현재 CCM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일반 팝 차트에서도 1위에 오르는 등 일반 팝계에서도 활발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일반 팝과는 다른 기독교적인 도덕과 사랑, 사회정의를 담고 있는 노래가 나름대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대중음악으로 등장한 CCM이 대표되는 용어로 쓰여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CCM과 '컨템퍼러리'의 개념
( 1 )CCM이란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말이었다.CBS의 "가스펠아워"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이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통찬송가나 고전음악쪽의 기독교음악을 제외한,대중적인 기독교음악은 '가스펠' 또는 이를 번역한 '복음성가'로 통칭하고 있었다.그 때문에 방송프로그램 이름도 "가스펠아워"라고 불렀던 것이다.그러나 가스펠뮤직 정보가 차츰 정리되면서 우리는 '가스펠' 또는 '복음성가'란 말로는대중적 기독교음악을 모두 표현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결과 CCM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그런데 CCM의 본고장인 미국의 CCM이 주로 소개되다보니 은연중 CCM은 미국의 대중적기독교음악을 지칭하는 것처럼 쓰여져서 미국엔 'CCM', 한국엔 '복음성가'라는 분류가 퍼졌다. 마치 미국대중음악은 POP, 한국대중음악은 가요... 이런 식이었다.그런가 하면 일반 대중음악계에서 CCM의 존재를 깨달으면서 CCM을 신문이나 잡지에소개할때 주로 국내가요를 하다가 크리스천음악으로 크로스오버한 사람들 위주로 소개를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덕신, 최인혁보다는 하덕규, 김성호,조하문 등의 이름이 일반대중음악계에 먼저 알려졌다.그결과 사람들은 CCM을 '가요스타일로 된 크리스천음악' 또는 가요를 하던 이들이 크리스천음악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생겨났다.어떤때는 '우리는 CCM을 지향하는 그룹입니다.'라거나 'CCM은 제대로 된 찬양이 아니야'라면서같은 음악끼리 서로를 구별하려는 일도 일어났다. CCM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다보니 CCM을 서로자기 잣대로 규정하는 일이 펴져버린 것이다.사실 우리가 얘기하는 '복음성가'나 '가스펠'이나 'CCM'이나 사실상 다 한가지 범주에 속한다고 봐도좋다. 이것은 요즘 우리나라 가요가 구미 팝과 그 스타일면서에 전혀 다를 바 없는 한가지 범주의 음악인것과 마찬가지다.그런데도 이들이 서로 다른 범주를 가진다고 잘못 생각함으로써 개념의 혼돈이 일어났다.그 결과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끼리 우리는 서로 다른 음악을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짙어지다보니'저런 음악이 어떻게 크리스천 음악인가'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이런 혼돈을 풀어보기 위해 가요의 예를 들어보자. 남진, 나훈아의 전성시대의 가요는 미국의 팝과 확실히다른 것 같았다. 그래서 팝과 가요는 단순히 영어와 우리말의 차이만이 아닌, 뭔가 구별된 용어였다.그러나 지금은, 김건모와 주주클럽, 에쵸티와 조성모의 노래를 듣는 지금은,가요와 팝은 구별된 용어가 아니다. 우리 가요도 미국의 팝과 똑같이 랩, 레게, 모던록, 얼터너티브 록,리듬 앤 블루스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던 록을 하는 가수에게 '그런 음악을 어떻게 가요라고할 수 있나?', '그런 음악을 하면 안돼.'라고 말할 수 있을까?발라드나 트로트만을 해야 가요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같은 맥락에서 보자. 복음성가와 미국CCM이 뭔가 구별된 듯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복음성가와 미국CCM의 스타일은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뭔가 더 비트가 강하고 진보적인 사운드를내는 음악만을 CCM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현재 상황에서 CCM은 대중적인 기독교음악을 거의 다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정작 CCM의 원류인 미국에서는 어떻게 말할까? 그들은 보통 '크리스천 뮤직'으로 얘기한다.'가스펠 뮤직'이 여전히 대중적인 기독교음악의 대표적인 용어이긴 하지만 실제로 '가스펠 뮤직계'에관련된 사람들은 '크리스천 뮤직'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그 '크리스천 뮤직'에 '컨템퍼러리'라는 말이 더해지면서 대중적 기독교음악은 그 성격이 더욱 분명해졌다.CCM은 어떻게 그 용어가 정착되었는가? '가스펠'이라는 전통적인 용어가 있음에도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인이 있다.첫째로, 음악적인 면에서 CCM은 기존의 스타일과 다른 면을 확연히 보여준 음악이었다. 팝/록을 비롯해새로운 스타일, 다양한 스타일을 반영하는 새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가 필요했다.처음엔 지저스 록/지저스 뮤직 등으로 표현했지만 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이라는이름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혼동이 있긴 하다. 전통적인 팝음악계에서는 여전히 '가스펠'이란이름에 익숙해있고, 그래서 '가스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뭔가 어색한 이 음악에 '컨템퍼러리 팝 가스펠','컨템퍼러리 록 가스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 음악계에서는 '크리스천 뮤직'으로 일반화되어있는 것이다.두 번째로, 내용적으로 '컨템퍼러리'한 상황을 반영하고 그 의미를 구현하는 음악을 표현하는 용어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수직적인 찬양' 또는 '자기 고백적인 믿음'을 담은 내용만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 문화상을 반영한 음악용어, 내용의 영역을 넓힌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CCM'이 필요했다.셋째로, 산업적인 측면을 들 수 있다. 가스펠음악이 컨템퍼러리하게 변하면서 점차 산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가스펠 음반산업은 상업적 유통구조에 편입됐고 나아가 여러 문화시장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다. 그에 따라 '복음을 담고 있는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벗어나 일반대중음악에서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미 시장구조에 들어서있던 '블랙가스펠'과도 대응되는 용어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CCM이란 용어가 정착된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CCM이란 말을 바라보고 사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중적 기독교음악의 흐름에서, '가스펠', '복음성가', 'CCM'이란 용어가 어떻게 등장했고 쓰이고 있는가를 제대로 바라볼때에 우리는 대중적 기독교음악의 발전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컨템퍼러리 정신과 CCM
1555년, 교황 마르첼루스 2세는 성금요일에 교황의 공식합창단인 시스틴 성당 성가대원을 모아놓고 '속되고 지저분한' 가락을 끌어들여 가사의 분명한 전달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고 얘기했다.그 '속되고 지저분한' 가락은 당시 유행하고 있던 다성음악이었다. 교회는 천 년 동안 단선율 성가를, 그것도 사제만이 불러왔다. 암브로시우스 성가로부터 그레고리오 성가를 거쳐 16세기 다성음악에까지 이른 서양교회음악은 기교와 창법에 있어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당초의 숭고하고 엄숙한 정신을 잃어버리고 세속적이고 유희적으로 타락해 교회의 걱정을 낳았던 것이다.시스틴 성당 성가대 지휘자였던 팔레스트리나는 얼마 안가서 교황 바오로 4세에게 해고당했다. 다른 성가대원 두 명과 함께 '결혼한 몸'이라는 이유로 쫒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그의 음악때문이었다.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들고 프로테스탄트가 유럽전역으로 번지자 가톨릭에서도 이에 맞서 스스로를 개혁하려고 했다. 반종교개혁이었다. 반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 안에서 온갖 '불순물'을 씻어내려했다. 팔레스트리나의 음악도 그 '불순물' 중의 하나였다.다성음악을 이미 추방해버린 교회도 있었다. 급기야 로마 교회는 다성음악을 교회에서 완전추방하기로 결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거리의 속되고 야한 가락이 뒤섞인 다성음악을 예배음악으로 쓸 수 없다... 선율이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뻗어나가기 때문에 가사전달에 방해가 된다... 하나님 말씀 전달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탄의 음악일 뿐이다...팔레스트리나는 자신이 지닌 온갖 음악적 재능을 쏟아붓고 열과 성을 다해 다성음악으로 예배곡을 만들어 교황에게 바쳤다. 그 작품이 "교황 마르첼루스의 미사"였다. 이 음악은 단선율 못지 않게 곱고 순결하면서도 복잡함이 복잡하지 않고 거대한 성당 내부처럼 화려하고 찬란했다. 다성음악을 반대했던 쪽이나 찬성했던 쪽이나 모두 눈을 감았다. 감동했다. 다성음악을 추방하려던 계획은 마침내 취소되었다.이 이야기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전설과 후대의 추정으로 엮어진 개연적 진실이다.팔레스트리나의 "교황 마르첼루스의 미사"는 단선율 음악과 다성음악이 혼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작품은 트렌트 공의회의 작곡지침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다성음악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얼마나 쓸모있는가를 증명해냈다. 팔레스트리나는 '俗'을 '聖'으로 바꾼 천상의 음악을 만들어냈던 것이다.400여년전,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과 행적에서 우리는 '컨템퍼러리'의 정신을 본다. 치열하고도 숭고한 그의 정신이 당대의 음악, 당대의 대표적인 문화를 승화시켜 지고한 찬양을 선보였던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당시 스타일로 독일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성가 '코랄'을 창안했고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 리가 어떤 음악이든 당시 유행하던 음악을 기꺼이 차용해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게 했던 것도 기독교음악 중에서 '컨템퍼러리' 운동이 아니었을까...2000년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가 새로운 '聖'스러움을 만들어나가는 컨템퍼러리 운동이 계속되어야하지 않을까... CCM은 이런 흐름 속에서 발전되어야 한다.그레고리안 찬트에서 다성음악, 팔레스트리나에서 바하, 루터에서 웨슬리... 이렇게 교회와 관련된 음악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면서 변화해왔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면서 찬송가를 가져갔고 그 찬송가는 광활한 아메리카대륙의 곳곳에서 오랫동안 간직되기도 하고 독특하게 변형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건너온 흑인들은 토속적 요소와 한으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접점... 이 접점이 오늘날 대중음악의 실마리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또한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의 실마리이기도 했다.이제 무대는 미국으로 넘어왔다. 19세기말 대각성기간에 백인과 흑인은 함께 노래했다. 캠프모임에서 이들은 함께 박수치고 춤도 추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가스펠'이라고 부르는 노래가 나왔고 주일 예배에서 '가스펠'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흑인의 음악은 소울, 리듬 앤 블루스로 발전해왔고 백인의 음악은 컨츄리, 스탠더드 팝에 머물러있었다. 여기서 또 접점이 이뤄진다. 컨츄리와 블루스는 록큰롤을 만들어냈다. 록큰롤은 세계를 휩쓸었다.마할리아 잭슨이 블랙 가스펠을 경지로 이끌고 있을 무렵 백인의 가스펠은 컨츄리스타일의 가스펠(서던 가스펠)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의 록큰롤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즈음 크리스천 뮤직은 또 하나의 접점을 찾았다.그런데 이번의 접점은 달랐다. 흑인음악과 백인음악과의 접점을 넘어, 진리를 담은 내용과 록과의 접점을 넘어 하나님과 인간, 교회와 세상에 다 열려진 접점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예수음악Jesus music, 예수-록Jesus-rock으로 불렸던 이 새로운 접점의 음악은 기독교 음악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도 당대의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가지 않으면 예외없이 멸망하리라는 외침도 있었고 우리 모두 예비하지 않으면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는 일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자적인 경고도 있었다. 물론 주님의 사랑과 은총도 노래했다.컨템퍼러리 음악은 음악적으로 랄프 카마이클, 비틀즈 등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전자악기와 매스 미디어의 포장도로를 달려온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컨템퍼러리 음악은 세상의 음악흐름, 그중에서 록큰롤의 껍데기에 기독교적인 내용만을 담은 어색한 만남 이상의 것이었다. 만약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이 일반 세상음악을 빌려와서(때로는 훔쳐와서) 내용만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채우는 단순한 생각으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시도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컨템퍼러리 음악은 당대의 사회와 문화,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꿰뚫어보고 명확하게 그리스도의 진리와 가치관으로 지적하고 채찍질하고 나아가 해답을 주는 것이었다.그렇게 해서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은 단순한 음악적 변화를 넘어 보다 근본적으로 삶의 문제를 던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질적인 단계로 등장했다.1965년 배리 맥가이어는 당시의 사회상을 신랄하게 그린 "파멸 전야Eve of Destruction"을 발표했다. 이 노래는 너무 저항적이고 급진적이라고 해서 방송을 금지하는 곳이 많았음에도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당시 학생운동의 대표적인 노래로 떠올랐다. 이 노래 이후 배리 맥가이어는 참구원의 문제로 질적인 도약을 했다. 1973년 배리는 "씨앗Seeds"이라는 첫 크리스천 앨범을 냈다. 배리 맥가이어는 문제제기와 저항을 알았고 그 참 해결책도 깨달은 접점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의 노래야말로 CCM의 첫 길을 다지는 노래였다.공산세계는 폭발하고 있습니다화염과 총탄이 어지러이 날립니다당신은 살인을 할만큼 컸지만 아직 선거권은 없군요당신은 전쟁을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그 손에 쥔 총은 무엇인가요?요단강마저 시체가 떠내려가는 지금...아니야... 아니야... 아니야...지금은 결코 파멸의 전야가 아니야...당신은 세상을 파멸로 몰고 있으면서결코 종말을 믿지 않는군요(Eve of Destruction, Barry McGuire 1965)Re 1: 래리 노먼-노래듣기
컨템퍼러리... 래리 노먼
"왜 이 좋은 음악을 모두 악마가 가진단 말인가?"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연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교회뿐만 아니라 예배도 개혁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음악을 개혁했다. 우선 가사를 보통사람의 언어로 바꿨다.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라틴어에서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가사를 썼다. 그 가사모델로 당시 유행했던 발라드를 들었다. 시편가사만을 인정하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것이었다. 곡조도 바꿨다. 그레고리안 찬트에서 독일민요, 대중의 노래, 심지어 메리 여왕의 찬가도 빌렸다. 루터는 신학 다음으로 음악을 놓을만큼 음악에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그 음악은 진리를 전하는 능력에 더 중점을 둔 것이었다. 루터는 말했다. "악마 혼자서 좋은 곡조를 다 차지할 필요가 없다." 그는 젊은이들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소리나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다 소리나게 하겠다고 했다.300년 후,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암 부쓰는 여러가지 악기를 써서 할렐루야 밴드를 만들었다. 믿지 않는 이들이 전통적인 곡조를 따라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쉬운 곡조로 연주했다. 그 곡조는 세속곡조였다. 부쓰는 세속음악을 빌려 그 가사를 바꿨다. 그 중에는 지금까지도 불리는 "그 친구 내가 알기전I've found a friend in Jesus", "내 진정 사모하는He's the Lily of the Valley"도 있었다. 부쓰는 당대의 사람들의 언어로 된 노래를 원했다. 당대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흥얼거릴 수 있을만큼 쉬운 노래를 원했다. 그의 음악은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했다. 부쓰가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다."왜 좋은 곡조는 다 악마가 가져야만 하는가?"다시 100년 후, 래리 노먼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새로운 음악과 오늘의 사회를 반영하는 노랫말로 컨템퍼러리 음악의 선구자가 되었다. 어릴때부터 흑인음악을 듣고 자란 래리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록큰롤을 듣고 가사만 세속적이었지 음악은 가스펠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 음악을 다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1969년 래리 노먼은 드디어 그 음악에 사회와 문화를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분석해 광야에 외치는 가사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울타리에 갇혀있던 기독교음악의 영역을 무너뜨렸다. 쉬운 가사, 쉬운 곡조만이 아닌, 크리스천이면 진정으로 외쳐야할 문제들을 과감히 외쳤다. 래리 노먼은 루터와 부쓰를 넘어선 것이었다. 래리도 물었다."왜 좋은 음악은 모두 악마가 가져야만 하는가?"I want the people to know that He saved my soulBut I still like to listen to the radioThey say rock 'n' roll is wrong, we'll give you one more chanceI say I feel so good I gotta get up and danceI know what's right, I know what's wrong, I don't confuse itAll I'm really trying to sayIs why should the devil have all the good music?I feel good every day'Cause Jesus is the rock and he rolled my blues away... ...Jesus told the truth, Jesus showed the wayThere's one more thing I'd like to sayThey nailed him to the cross, they laid him in the ground,But they shoulda known you can't keep a good man downI feel good every day, I don't wanna lose itAll I wanna, all I wanna knowIs why should the devil have all the good musicI've been filled, I feel okay,Jesus is the rock and he rolled my blues away내 영혼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하지만 나는 아직도 라디오 듣는게 좋아요사람들은 '록큰롤은 나쁜 것이야...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 이렇게 말합니다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난 너무 좋아서 일어나 춤을 춰야겠어요난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잘 압니다난 혼동하지 않습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왜 좋은 음악은 모두 악마가 가져야만 하는가?'난 매일매일 기쁩니다반석이신 예수님이 슬픔을 모두 없애주셨거든요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보여주셨습니다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땅 밑으로 묻어버렸습니다우리는 예수님을 아직도 땅 속에 묻어두고 있는게 아닐까요난 매일매일 기쁩니다 이 기쁨을 잃고 싶지 않아요예수님은 우리의 반석이시고 예수님은 내 슬픔을 모두 없애주셨습니다(Why Should the Deveil Have All the Good Music?, Larry Norman, 1973)비평가들이 가장 의미있는 앨범으로 꼽고 있는 앨범 표지에 실린 래리 노먼
<컨템퍼러리... 래리 노먼 2>
래리 노먼은 일반대중음악이 사용한 록큰롤을 도입하여 본격적인 크리스천 음악을 만든 CCM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록큰롤을 먼저 도입했다고 해서 CCM의 선구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음악스타일에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은 시도는 이전부터 다른 음악인들이 꾸준히 해온 것이어서 사실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처음에 래리 노먼의 음악에 놀란 이유는 파격적인 옷차림과 사운드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때문이었다. 그 놀람은 거부감이었다. 파격적인 옷차림과 사운드는 래리 노먼의 음악의 본질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질보다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거부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래리 노먼은 '컨템퍼러리' 음악의 선구자가 될 수 없었다.래리 노먼이 열어 놓은 '컨템퍼러리' 음악의 본질은 그 메시지에 있었다. 그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의 음악은 '컨템퍼러리'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음악을 통해 '바로 지금 땅을 밟고 있는 우리'를 얘기했다. 그리고 그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아가 그 '질문'에 해답을 명확하게 노래했다. 래리 노먼 이전에는 이러한 본격적인 시도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래리 노먼의 음악을 넘어서는 이들도 없었다. 이 때문에 래리 노먼은 CCM의 선구자로서 CCM의 깃발을 든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그는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보려고 했다. 그의 노래를 살펴보자.*문명의 편리함을 누리며 안락의자에 반쯤 누워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여전히 가난과 범죄일뿐이다(Living in the 20th Century).*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 그 미국은 자유의 땅이다... 누구나 자유와 정의를 누릴 수 있다... 돈만 있다면! - (Step into the Madness).*달나라에 먼저 발을 딛으려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한 줌의 쌀이 없어서 어린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The Great American Novel).*이러한 현실을 알리고 싶어도 사람들은 우리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있고 언론은 우리의 정신까지도 왜곡해버린다(Stop the Flight).*그래도 전쟁과 가난을 알려보려고 애쓰지만 우리는 세상에 실제로 평화를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사진찍어 보내는 일밖엔 할 수 없는, 제 3자의 입장으로 영화를 보듯하는 6시 뉴스일 뿐이다(Six O'clock News).*래리 노먼은 분개한다.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말로는 너무나 잘하는 교회에게 편지를 보낸다(Letter to the Church).*서로의 발을 씻기기 보다는 서로 더 커지려고만 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가 서로 형제라면 왜 서로 사랑하지 않습니까? 왜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까?'(If God is My Father)*그는 돈 때문에 영혼문제를 타협하지 말라고 노래한다(Camel through a Needle's Eye).*데이빗 보위David Bowie, 롤링스톤즈Rolling Stones, 비틀즈 Beatles, 지미 헨드릭스Jimmy Hendricks,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등 구체적인 우상을 노래에 등장시키고 누가 참 주인인지를 보여준다(Reader's Digest / Elvis Has Left the Building).래리 노먼이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진리를 전하려는 노력을 하자 여기 저기서 미움을 받게 되었다. 선구자는 언제나 질시와 배척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나는 마치 총에 맞은 것 같습니다사람들이 수근수근대면서 내 이름을 더럽힙니다하지만 나는 다시 예수님을 얘기합니다나는 얻어맞기도 하고 무수히 발로 채였습니다그래도 나는 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것처럼 또다시 예수님을 전파합니다나는 그동안 수모를 무수히 겪었습니다사람들은 내가 한 말, 내가 부른 노래,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조롱을 퍼부었습니다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습니다눈을 감아버리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까요사람들은 내가 죄가 많다고 합니다명성이나 얻으려고 이런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그래도 나는 다시 예수님을 노래합니다 다시 예수님을 전파합니다(Shot Down)"*그는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외딴 섬에 혼자 있는 외로운 소년이었다(Lonely Boy).*그러나 그 외로운 소년은 지금까지도 우리 모두 하늘에서 함께 보기를 바란다면서(I Hope I'll See You in Heaven)*우리 모두 예비하자고 손을 잡아이끈다(I Wish We'd All Been Ready).현실을 직시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노래하려했던 래리 노먼이 갖가지 스타일의 음악을 쓰게 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겉모습, 즉 음악적인 스타일과 옷차림과 태도를 보고 '컨템퍼러리'라는 말을 붙였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 내용이 컨템퍼러리했기 때문에 겉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외로웠지만 주님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아마도 그의 노래 중 가장 짧은 가사를 가진 노래처럼."Looking for the footprints of the Man who wears the sandalsLooking for the footprints of the Man who wears the sandals(Looking for the Footprint)"# 괄호 안의 영문은 모두 래리 노먼의 노래제목입니다 #이 혼동의 시기에 내가 바로 서 있지 못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