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 / 사월과 오월
외로움에 아픈 마음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
하염없이 긴긴 밤들을 싫도록 받았습니다
돌아오는 화요일은 옛님과 헤어지던 날
전 날에 즐겁던 일들이 추억에 물들은 날
잊지 못할 옛 사랑
돌아오는 화요일은 옛님과 헤어지던 날
전 날에 즐겁던 일들이 추억에 물들은 날
잊지 못할 옛 사랑
사월과오월은 1972년부터 1975년까지가 전성기의 시절로 백순진과 김태풍으로 이루어진 듀엣이다. 약4년간 활동하고 4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해체했지만, 당시 인기는 어느 그룹 못지 않았다.
백순진은 어릴 적 노래할 때마다 100원의 용돈을 준 이모의 영향으로 노래를 자주 불렀고, 전학간 학교에서 노래하자 선생님께서 와락 껴안을 정도였다 한다. 조르고 졸라 기타를 사달라하자 크리스마스 선물로 일렉트릭 기타를 사주었는데, 그 길로 기타에 빠져 아버님과의 충돌로 부서진 기타만 대여섯개 된다 한다. 고2 시절에는 리사이틀도 열었다 합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앙대 작곡과에 입학했으나 가수활동으로 잘릴뻔하였고 사정사정하여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다.
김태풍은 집안에서 영창피아노와 유니버셜 레코드를 운영할 정도로 음악과 밀접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백순진의 기타실력을 보고는 자신과 비교가 안될 정도라 느꼈다고 한다.
원래 백순진은 이수만과 듀엣을 결성해 1집앨범을 발표했는데, 이수만이 건강상 문제로 활동을 하지 못하자 같이 있던 김태풍과 사월과오월을 결성하여 김태풍이 직접 부르지도 않은 1집 앨범 자켓사진에 등장하면서 부터 실질적인 4월과5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백순진은 원래 프로듀싱에 관심이 많았다 한다. 팀명칭을 사월과오월이라 한 것은 당시 많은 가수들이 반안곡을 부르고 팀명칭도 외국어를 사용하던 추세에 반발해 순수 한글로 팀명도 짓고, 노래도 자작곡으로 채웠다. 그리고 한국의 사이먼&가펀클을 꿈꾸며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그리고 1975년 김태풍이 노래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외국유학을 떠나면서 원년 사월과오월은 해체되었다.
백순진은 김정호와 사월과 오월을 결성해 노래하기도 하였으나 몇개월 가지 않았다. 이후 백순진은 계획했던대로 기획사를 차리고, 가수 오정식, 이영식 등과 함께 듀엣 하야로비를 결성하는데, 이 하야로비로 구성한 것이 후기 4월과5월 이다. "장미"는 후기 4월과5월시절 백순진이 만든 음악이었다.
얼마후 백순진도 외국으로 떠나 오랜기간 외국에서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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