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대중가요,가곡

찻잔의 이별 – 윤수일.최진희

청가헌 (聽可軒) 2022. 7. 27. 06:31

 찻잔의 이별 / 윤수일.최진희  (1987)

그대와 나의 찻잔이
자꾸만 식어 가는데

뜨겁던 우리 찻잔이
싸늘히 식어 가는데

우리는 말을 잊었네
할말은 서로 많은데

마시는 것도 잊었네
가슴은 타고 있는데

그렇게도 뜨거웠는데
그렇게도 행복 했는데

무슨 잘못으로 이렇게
싸늘하게 식어 버렸나

이제는 식은 찻잔에
이별을 타서 마시고

조용히 일어 서야지
눈물을 보이기 전에....

 

  • 출생  1955년 2월 6일 울산광역시 남구)
  • 신체  178cm, A형
  • 학력  학성고등학교 (졸업 / 1973년)

                울산대학교 (기계공학 / 학사)

                중앙대학교 (사회학 / 석사)

  • 가족  부인, 슬하 1남 1녀
  • 종교  개신교(침례회)
  • 데뷔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

생애

윤수일은 195526, 주한미군 공군 비행조종사였던 칼 브라울 어게스트 대위와 어머니 지복희 사이에 무녀독남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윤수일이 아직 태어나기 전 그의 친부는 임신중인 윤수일의 어머니에게 미국으로 데려갈 것을 약속하고 귀국을 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비행 도중 사고로 사망하였다.

 

윤수일의 어머니는 윤수일을 해외로 입양보내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윤수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후 울산 시골 출신의 윤성환과 재혼, 윤씨의 성을 따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다행스럽게도, 윤수일의 새아버지는 윤수일을 친자식처럼 아꼈고 윤수일은 새아버지에 대해 어머니와 잠깐 연애하고 떠나버린 사람은 아버지로서 의미가 없다. 날 친아들처럼 키워준 아버지가 진짜 내 아버지다라며 고마워하였다. 윤수일은 백인 아버지의 얼굴을 강하게 물려받아 이국적인 외모를 갖고 있었으며 당시 혼혈아가 시골 지역에서는 드물었기 때문에 윤수일은 원하지 않는 큰 관심을 온 동네로부터 받으며 성장해야 했다. 어릴적에는 공부에 재능을 보여서, 울산 학성고등학교를 거쳐 울산대학교에 진학했다.

 

혼혈에 배타적인 당시 사회 모습 때문에 군 입대도, 공무원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던 그는 자신이 일반적인 경로(공부 등)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 예체능에 투신하기로 하고, 학성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부에 입단하지만 불과 1년 후에 야구부가 해체하게 되어 그만둔다. 그런 그에게 음악 선생님이 재능을 알아보고는 가수의 길을 권하고 윤수일은 2학년때부터 '엔젤스'라는 밴드를 꾸려 지역에서 공연을 하며 알음알음 활동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당시는 그룹 사운드의 전성시대였는데 윤수일 역시 1976년 신중현 사단의 '골든 그레이프스'라는 혼혈아 중심의(멤버 6명 중 4명이 혼혈 출신) 밴드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골든 그레이프스는 함정필(건반), 함중아(기타, 보컬) 형제가 주축이 된 싸이키델릭 록 밴드였는데 함중아가 탈퇴하며 그 자리에 윤수일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2]

 

그러다 1977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에서 발탁되었고 당시 안타프로덕션의 사장이자 작곡가인 안치행의 눈에 띄어 음반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원래 밴드명 대신 가장 스타성이 돋보였던 윤수일을 전면에 내세운 '윤수일과 솜사탕'이라는 이름을 썼다. 전 수록곡 9곡 중 8곡이 밴드의 리더인 건반주자 함정필의 곡들이었는데 나머지 한곡이 바로 안치행이 작곡한 트로트곡 사랑만은 않겠어요였고 이 곡이 대히트를 친다. 앨범 전체적으로 골든 그레이프스 시절의 싸이키델릭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윤수일의 보컬이 전면에 나선 가요앨범으로 느껴진다. 이 때문에 밴드는 트로트 풍이 좀 가미되더라도 대중적이고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하고자 했던 윤수일과 정통 록 사운드를 지키고자 했던 나머지 멤버들 사이에 내분이 생겨 해체되고 그는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안치행의 프로듀스 하에 1978년부터 1980년까지 3년간 공식적으로 5장의 트로트 풍이 가미된 가요 앨범을 더 내면서 인기 가수 대열에 올랐다.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 공개 코미디 등 TV 예능에도 자주 모습을 비추면서, 매력적인 보이스와 잘생긴 얼굴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던 1981년 윤수일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윤수일밴드를 이끌고 록 냄새가 물씬 풍기는 윤수일밴드 1집을 발표한다.

이때부터 그의 음악인생의 정점을 달리는 시기가 시작되는데, 번안곡 2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모두 윤수일의 자작곡이었다.

윤수일의 자작곡이 대부분이지만 솔로가수의 백밴드가 아닌 밴드 지향적인 음악으로 지금 들어도 근사한 기타리프를 선보이는 떠나지 마와 제2의 고향 그리고 비 같은 넘버에서는 블루지한 긴 기타 솔로가 들어있다. 2의 고향은 1967년 미국에서 인기를 끈 "TV" 락 밴드 몽키즈의 "Pleasant Valley Sunday"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음반은 현재도 윤수일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

 

이듬해 1982년 아파트가 담겨있는 2집이 발매되었고 이 노래가 전국적인 대히트를 치면서 시대를 넘어선 최고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는 막 잠실에 우후죽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 노래 역시 윤수일 본인이 작사 작곡 한 노래이며 친구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군대에 갔던 친구가 돌아와 보니 여자친구 가족은 그에게 연락도 없이 외국으로 이민 간 상태였고 아파트 초인종만 누르다 결국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이국적이고 수려한 외모로 1980년대 당시 몹시 큰 인기를 끌었고 떠나지마, 2의 고향, 유랑자, 아파트, 황홀한 고백, 아름다워, 환상의 섬 등등 수많은 히트곡 및 명곡들을 남겼다. 초기엔 윤수일 본인이 언급하기도 했던 '락뽕'(+뽕짝) 장르에 충실한 사운드로, 록에 트로트가 가미되었지만 결코 저급하거나 촌스럽지 않은 한국적인 록사운드를 선보였고, "아름다워"는 소프트 록에 R&B 색채를 가미한 세련된 곡으로 일각에서 한국 시티 팝의 대표적인 예(사실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잘못된 분류이다.)로 언급하면서 재조명되기도 했다. 80년대 중반 이후로 황홀한 고백부터는 댄스(라기보다는 무대 액션)까지 가미된 조금 더 가요에 가까운 사운드를 선보였다.

 

이후 다시 본격적인 활동을 재기한 그는 2008년 싱글 '터미널'이 나름대로 히트를 치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데뷔 초보다 더 록에 근접한 사운드로 김종서, 박상민 밴드등을 거친 최정상급 세션 기타리스트 타미킴이 오랫동안 라이브에 참여하였다.

여담

  • 그의 노래중 아름다워 덕에 미스코리아 대회 단골 초대 가수였는데, 윤수일이 꽃을 준 참가자는 높은 확률로 진이나 선에 올라섰다는 징크스가 있다. 배우 장윤정, 김성령, 고현정 등이 그에게 꽃을 받고 미스코리아 진, 미스코리아 선에 올랐다. 안목이 대단한듯.
  • 청춘스타로 한참 잘나가던 무렵에 동양방송 생방송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섭외가 되어 출연했다. 그 프로그램에서 타잔 역을 받았는데 줄타고 내려오다가, 인디언 역할이라는 단역을 맡고 있던 당시의 무명 코미디언 이주일과 부딪히는 바람에 세트로 설치된 연못에 빠져 두 사람의 몸이 쫄딱 젖는 대형 방송사고가 났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시청자들의 폭소를 유발했던터라, 이주일이 길고 긴 무명 신세에서 벗어나 스타덤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1]  그가 진짜 윤수일의 어머니를 미국으로 데려갈 의도가 있었을지는 불명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사망하기도 했지만, 어게스트 대위는 이미 본국에 미국인 아내와 아이까지 둔 상태였기 때문인데, 파병군인들이 현지 여성과 아이를 만들어두고 나중에 데려가겠다는 기약없는 약속만 하고 이들을 버려두는 케이스는 상당히 흔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군들에 의해 그런 일이 매우 흔하게 벌어졌고, 유사한 현상은 베트남전시기 한국인들에 의해서 발생한 바 있다. 심지어 주일미군이 주둔한 오키나와에도 비슷한 일은 꽤 많았다. 현직 오키나와 현지사나, 이라부 히데키등이 이런 케이스.

[2]  이후 함중아는 함중아와 양키스를 결성하고 윤수일밴드를 결성한 윤수일과 여러가지 면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3]  에릭 클랩튼의 Promises를 번안한 약속과 로드 스튜어트의 Passion을 번안한 침묵. 이 중 침묵은 어느 정도 히트하기도 했다.

[4]  박상민 밴드 시절 윤수일 메들리는 항상 연주되던 레퍼토리.

  • 본명    최명숙
  • 출생   1957년 1월 3일  충청남도 아산시
  • 거주지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 장르    트로트
  • 활동시기  1983년 ~
  • 배우자   유승진
  • 가족    슬하 1녀
  • 고모    최선자 (1961년 연극〈청포도 극회〉로 데뷔한 배우 최선자다.)
  • 고모부  구석봉
  • 종교   천주교

최진희 (본명: 최명숙, 崔辰熙, 1957 1 3 ~ )은 대한민국의 가수로, 한울타리의 멤버였다.

현재 거주지는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이다.

생애

최진희는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와 상경해 오아시스레코드사의 오디션에 합격하였으여, 데뷔 초창기 음악 학원에 드나들다가 또래 여자아이들과 뜻을 모아 6인조 밴드 양떼들을 결성해 활동하였다. 그 후 명동 등지 클럽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으며, 호텔 삼정과 도쿄 등 유명한 나이트클럽으로 옮겨 다니면서 실력 있는 밴드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가창력이 돋보인 최진희는 1982년 호텔 엠버서 나이트클럽에서 활동할 때 또 다른 팀인 에이원쇼의 악단장인 김희갑의 눈에 띄어 김희갑이 맡았던 KBS 드라마 청춘행진곡의 주제가였던 그대는 나의 인생을 부르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뒤늦게 결성한 그룹사운드 <한울타리>의 첫번째 음반을 발매하게 된 그대는 나의 인생은 베이스 기타 주자였던 허영래와 같이 부른 곡으로 한울타리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이 곡은 1984년도 라디오 방송횟수 1위를 기록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진희는 1984년에 김희갑의 곡으로 수록된 데뷔 앨범을 발표하면서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 타이틀 곡이었던 사랑의 미로는 감미로운 발라드풍 멜로디와 서정스러운 가사로 이루어진 곡으로 폭발하는 듯한 반응을 끌어모아 국민 애창곡으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이곡은 김중순 작사 태원 노래의 <너의 사랑> 이 원곡이다. 특히 이 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국민요집에 수록되어 있으며, 당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애창곡으로 알려져 북한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그대는 나의 인생하고 사랑의 미로를 부르면서 스타덤에 올랐던 최진희는 1985년부터 KBS 10대 가수상을 받았으며, MBC 드라마 물보라의 주제가였던 물보라로 제2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주제가상을 받았으며, 1986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어도를 불러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금상을 받는 등 많은 상을 받았으며, 김수희, 심수봉, 주현미 등과 1980년대 트로트 중흥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4(四却) 체제를 이루었을 만큼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최진희는 트로트 성향을 보이면서 포크풍·발라드풍을 약간 혼합한 듯한 곡을 자주 불렀다.

 

1987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가 수록된 앨범도 무려 50만 장 이상이 팔릴 만큼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으며, 뉴질랜드 ABU 가요제 금상을 받았다. 1989년에 미련 때문에를 발표하면서 트로트로 성향을 바꾸며 일본 NHK TV에 출연하고 일본의 음반사와 계약해 일본에도 진출하였으며, 같은 해 이수만과 롯데칠성음료의 따봉주스 CF에도 출연하였다. 1991년에는 음반 판매량을 기준으로 상을 받는 골든디스크상을 비롯하여 KBS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트로트에만 치중하지 않고 발라드와 포크 곡도 많이 불렀으며, 그 중에서 1994년에 히트한 꼬마인형 1999년에 히트한 천상재회가 대표이고 30대에서 40대 주부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인기가 급상승하였다.

 

2003년 임종수 작곡으로 유갑순이 1983년에 발표한 <기억>이라는 곡을 본인이 새로 가사를 써서 리메이크한 트로트 가져가로 활동했으며, 2005년에 1978년에 혼성그룹 작은새의 여성 멤버였던 노두옥이 1978년에 발표한 미워도 내사랑은을 제목을 새로 달고 댄스리듬으로 편곡하여 발표한 여정을 히트시켰으며, 트로트 인기 차트에서 상위권을 석권했다. 2008년 여러 사정이 겹쳐 몇년 간 잘 활동하지 못 했다고 밝혔다. 2012 MBC 설 특집 프로그램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 출연하였으며, 2013 12월 최진희 데뷔 30주년 천상콘서트를 개최하였다. 2015, MBC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출연하여 뛰어난 음악 실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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