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대중가요,가곡

모두가 사랑이에요 – 해바라기

청가헌 (聽可軒) 2022. 3. 14. 13:11

모두가 사랑이에요 / 해바라기

모두가 이별이에요. 따뜻한 공간과도 이별

수많은 시간과도 이별이지요. 이별이지요.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오네요.

이것이 슬픔이란 걸 난 알아요.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요.

사랑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모두가 사랑이에요.

마음이 넓어지고 예뻐질 것 같아요.

이것이 행복이란 걸 난 알아요.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콧날이 시큰해지며 눈이 아파오네요.

이것이 슬픔이란 걸 난 알아요.

이것이 슬픔이란 걸 난 알아요.

 

초창기 해바라기는 1973년 명동 가톨릭회관의 해바라기홀에서 함께 노래를 부른 이정선, 이주호, 한영애, 김영미가 4인조 포크 그룹을 결성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다만 그룹을 결성했으나 정작 팀 이름을 짓지 못하자 가톨릭회관의 올레뜨 수녀에게 그룹 이름을 지어달라 권유하게 된다. 올레뜨 수녀는 4명이 노래하는 곳이 해바라기홀 이기에 해바라기로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는 답변에 4인조는 그룹 이름을 해바라기로 정하게 된다.

 

그룹명까지 정한 해바라기는 1977년에 데뷔 앨범으로 해바라기 노래모음 제1을 발매한다. 자연을 소재로 작곡한 리더 이정선의 영향으로 맑고 부드러운 포크송이 수록 되었는데 당시로썬 보기 어려운 독보적인 합창과 혼성이 특징이다. 위 특징을 잘 살려낸 수록곡인 <구름, 들꽃, , 연인>은 당시 청년층들이 즐겨 부르며 해바라기의 유세를 떨치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79년에는 멤버였던 이주호는 군 입대로 인하여 탈퇴하게 되고 이주호의 자리를 대신하여 이광조가 합류한다. 이후 두 번째 정규 앨범인 해바라기 2을 발매한다. 1집과 다르게 2집에서는 포크, 동요,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수록한게 특징인데 대표적으로 <여름>, <추억의 백마강> 등이 대중적으로 히트를 하게된다. 많은 곡들이 인기를 끌게되지만 그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는 곡인 <뭉게구름>은 서정적인 가사와 동요같은 반주로 현재까지 회자될만큼 가장 높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후 1982년 이주호는 유익종과 함께 2인조 체제의 해바라기를 새롭게 결성했고, 1983년 정규 1집을 냈다. 이주호가 이끄는 듀오 '해바라기'와 이정선, 한영애가 주축이 된 4인조 '해바라기'는 별개의 존재.

 

이주호, 유익종 2인의 원년 듀오 멤버가 1980년대 중반을 산 사람들에게는 가장 잘 알려져 있을 텐데, 해바라기의 대표곡인 행복을 주는 사람, 모두가 사랑이에요, 어서 말을 해, 내 마음의 보석상자, 너 등이 전부 이 두 명이 활동할 때 처음 발매된 노래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대표곡인 사랑으로는 유익종이 팀을 나와 솔로로 전향한 뒤 이주호와 이광준이 함께 활동할 때인 1989년 발매된 것이다.

 

상기했듯 유익종이 탈퇴한 이후로는 이주호가 팀의 구심점이 되어 다른 한 명의 멤버만 몇 번씩 바뀌었다. 이광준, 심명기, 그리고 자전거 탄 풍경의 송봉주가 팀을 거쳐갔으며, 1999년부터 지금까지 강성운이 이주호[2]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금이야 콘서트 7080의 단골 가수 정도로만 인식되지만, 통기타를 배우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였던 1980년대의 청춘들에겐 해바라기의 음악은 거의 바이블 수준이다. 서정적인 기타 음률에 조용하면서도 어딘가 약간 꿈을 바라는 듯한 노래는 그 당시 청춘들 뿐만 아니라 전 연령에 걸쳐 사랑받았고 그만큼 명곡들이 많다.

 

'행복을 주는 사람'은 경연 프로그램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며 젊은 층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사랑으로'는 함께 살아가는 이상을 바라는 노래로 발매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적신 곡이며 김범수의 진지한 리메이크도 이루어진 적이 있고 '어서 말을 해' 같은 경우에는 2012년 국카스텐이 잔잔한 마이너 포크 발라드를 사이키델릭 하드 락으로 편곡해 불러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대표곡 〈사랑으로〉에 대하여

해바라기의 대표곡 사랑으로의 가사에 관한 일화가 있다.

이주호가 작곡을 하고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때 발표하려 했으나 가사를 완성하지 못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1989227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서 부모가 집에 없는 사이에 4자매가 생활고 등을 이유로 음독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의 발견으로 병원으로 옮겨져 막내딸은 사망,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중태에 빠졌다가 나중에 회복해서 퇴원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신문에서 보고 채 2분도 걸리지 않아 가사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나는 가수다에서 김범수가 리메이크를 할 때 리메이크는 허용했으나, 음원 발매는 허용하지 않았는데, 방송에서 김범수의 무대를 보고 음원 발매를 허용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리더 이주호가 청주에서 남양주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사설 구급차를 개인적인 용도로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주말이라 교통정체로 3시간이 넘게 걸렸을 거리인데 사이렌을 키고 달려 2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도착했다 한다. 소속사에선 실제로 고열에 혈압이 높아 사설 구급차를 불렀으나 컨디션이 나아져서 공연장으로 갔다며 중간에 몸 상태가 나아졌다고 구급차에서 내려야 되냐며 해명을 했고, 남양주시와 행사 주최측에선 컨디션이 안좋아 늦거나 참석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은적 없다고 한다. 이에 보건복지부와 관할 지자체에선 사설 구급차 업체를 조사한 후 위반사항이 발견되면 고발할 예정이라 밝혔다.

[1] 물론 이주호의 해바라기가 4인조 해바라기에서 파생된 것은 맞지만, 1983년 듀오 해바라기의 결성 이후에도 1986년 이정선, 한영애, 이광조, 그리고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김영미가 해바라기라는 이름으로 정규 3집을 내며 다시 활동한 바 있기 때문에 둘은 구별하는 것이 옳다. 참고로 이때 이정선이 작사, 작곡해 수록한 '우리네 인생'은 후에 김현식이 리메이크해 더욱 유명해졌다.

[2] 아들이 '썬플라워 리퍼블릭 91'의 싱어송라이터 '이상'(본명 이상수)으로, 미국에서 회계사 공부를 하면서 음악 활동을 병행했다. 공부하고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아버지를 놀라게 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재능을 선보였다고 한다.

[3] 2020년 물가로 환산해도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수입이다.

[4] 동아일보 1989228일 자 기사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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