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My Tomorrows / Carol Kidd 1985
Except for just a dream or two
But I've got lots of plans for tomorrow
And all my tomorrows belong to you
We're drifting and the laughs are few
But I've got rainbows planned for tomorrow
And all my tomorrows belong to you
That luck keeps passing me by, that's fate
But with you there at my side
I'll soon be turning the tide, just wait
It's you that I'll be clinging to
And all the dreams I dream, beg, or borrow
On some bright tomorrow they'll all come true
- 출생 1945년 10월 19일, 영국
- 데뷔 1990년 1집 'The Night We Called It a Day'
- 활동 1961년–현재
■캐롤 키드 MBE (Carol Kidd MBE, 1945년 10월 19일 ~ )는 스코틀랜드의 재즈 싱어이다.
Kidd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970년대 중반 비브라포니스트 / 색소포니스트 Jimmy Feighan 이 이끄는 밴드의 보컬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1990년에 그녀는 수상 경력에 빛나는 앨범 The Night We Called It Day 를 발표 했습니다. 그녀는 이후에 혼자서 광범위하게 연주하고 녹음했습니다. 그녀는 British Jazz Awards에서 여러 상을 수상했습니다. 1998년에 그녀는 MBE 로 임명되었습니다 .
■흑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재즈 디바의 호칭. 분명 자유롭고 풍성한 재즈의 매력은 흑인들의 것이 제격이다. 하지만 재즈 역사를 수놓은 위대한 디바들이 소화해 내지 못한 감성이라 할 ‘밝은’ 서정성은 캐롤 키드(Carol Kidd)의 것이다. 백인 재즈 가수 캐롤 키드는 곡에 서정미가 더해지면 우울해지고 슬퍼지는 재즈의 한계를 넘어 투명한 서정미를 표현해 낸 특별한 뮤지션이다.
1945년 스코틀랜드(Scotland)의 글래스고우(Glasgow)에서 태어나 15살의 어린 나이에 로컬 재즈 밴드에서 노래했을 정도로 오랜 기간 활동해왔다. 로컬 재즈 밴드에서 활동하던 중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이후 5년여의 시기를 트래디셔널 밴드로 칭해지는 구식 재즈 밴드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는 그녀의 음악이 세계에 빨리 알려지는 데에는 방해가 되었지만 이 기간에 구축한 보컬 스타일은 다른 재즈 싱어들과 구분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녀의 재즈는 어떤 맥락에서 해석을 하면 재즈 정통의 맛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재즈의 맛을 소화하면서 팝이 지닌 또 스코틀랜드의 전통음악이 지닌 서정성과 맑은 감성을 쏟아내는 그녀의 특화(特化)된 보컬은 여는 재즈가수보다 다양한 음악을 풀어나갈 수 있게 했다. 재즈의 본고장 출신이 아니었지만 20여 년의 시간동안 꾸준히 밴드 활동을 이어갔고, 차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최고의 보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데뷔 20여 년 동안 자신의 앨범을 단 한 장도 내지 못했다.
기나긴 무명 활동 끝에 1984년 데뷔 앨범인 <Carol Kidd>를 내놓는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출신의 20년 무명가수에게 대중들은 쉽사리 손을 건네지 않았고, 연이은 앨범 <All My Tomorrows>, <Nice Work> 역시 영국 바깥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세 앨범은 미국에서 1998년이 돼서야 정식 발매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스코틀랜드 무명 가수의 진가를 뒤늦게 알아본 사람은 스탠더드 팝 의 전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였다. 1990년 그는 자신의 영국 투어에 무명가수나 다름없는 캐롤 키드를 초대해 ‘신이 내려준 목소리’라고 격찬했고, 같은 해 런던 퀸 엘리자베스 홀(London’s Queen Elizabeth Hall)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역시 오프닝으로 캐롤 키드를 불렀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후광과 언론의 주목을 업고 마침내 영국의 우물 안 개구리 처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무명에 무명을 거듭해 온 캐롤 키드는 50줄에 가까워지는 1990년대가 되어서야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라서는 ‘슈퍼 지각 성공’을 경험한다. 1990년 <The Night We Called It A Day>, 이듬해의 <I’m Glad We Met>은 전 세계의 팬들에게 어필한다. 또 이 때서야 엄청난 상복에 휩싸인다. 1990년 <와이어 매거진>(Wire Magazine)으로부터 최우수 재즈보컬리스트를 수상한 이래 ‘브리티시 재즈 어워즈’ ‘칸 국제재즈 어워드’(Cannes International Jazz Award, ‘에딘버러 페스트 비평가상’(Edinburgh Fest Critics), ‘영국 재즈 어워드’(UK Jazz Award)’, ‘영국 음반소매상 협회상’(UK Music Retailers Award’) 등의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한다.
영미권에서의 활동에 상관없이 그녀의 음악은 국내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When I dream’ 때문이다. 이 곡은 1985년 작 <All My Tomorrows>에 수록되어 있는데 미국에서 알려지지 않았을 당시에도 국내 팬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베스트 앨범 형식으로 그녀의 음악을 담은 앨범이 <When I Dream>이라는 타이틀로 국내에 소개되었으며, ’When I dream’은 1990년대 초반 CF에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어 한국 정서에 잘 맞는 곡으로 꾸준히 사랑 받아왔다.
캐롤 키드의 이름을 한국 팬들에게 알린 결정타는 블록버스트의 신기원을 이룩한 한국영화 <쉬리>였다. ‘When I dream’이 엔딩 테마로 삽입되며 한국 대중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영화의 해외 진출과 더불어 이 곡 또한 일본을 동아시아 전역에서 다시금 인기를 누린다. <쉬리> 덕분에 그녀는 모처럼 일본 공연을 갖기도 했다.
<I’m Glad We Met> 이후 음반 활동에 소홀했던 그녀는 환갑에 가까워진 나이에도 불구 2000년 <Crazy For Gershwin>, 2001년 <Place In My Heart>를 연이어 발표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2000년에는 한국 팬들의 각별한 호응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한국인의 애청곡을 엮어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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