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Me / Queen (Remastered 2011)
It started off so well
They said we made a perfect pair
I clothed myself in your glory and your love
How I loved you
How I cried
The years of care and loyalty
Were nothing but a sham it seems
The years belie we lived a lie
I love you 'til I die
Save me, save me, save me
I can't face this life alone
Save me, save me, save me
I'm naked and I'm far from home
The slate will soon be clean
I'll erase the memories
To start again with somebody new
Was it all wasted
All that love?
I hang my head and I advertise
A soul for sale or rent
I have no heart I'm cold inside
I have no real intent
Save me, save me, save me
I can't face this life alone
Save me, save me, oh...
I'm naked and I'm far from home
Each night I cry I still believe the lie
I'll love you, 'till I die
Save me, save me, oh, save me
Don't let me face my life alone
Save me, save me, oh...
I'm naked and I'm far from home
처음 시작은 정말 좋았지
사람들은 우리가 완벽한 커플이라고 했어
난 당신 후광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지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데
내가 얼마나 울었는데
서로 배려하고 서로에게 충실했던 지난 날들이
이제 와선 그저 다 거짓으로 보일 뿐
"죽는 그날까지 당신을 사랑해." 그랬었는데
세월이 우릴 속였고 우린 거짓된 삶 살았던 걸까
날 구해줘 날 구해줘 날 구해줘
나 혼자서는 이 삶을 살아갈 수 없어
날 구해줘 날 구해줘 날 구해줘.
난 빈 몸뚱이에 집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
이제 과거는 잊고 새출발해야 해
난 추억들을 지워버릴 거야
새로운 누군가와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그 모든 게 다 쓸모없는 것이었을까?
우리의 그 모든 사랑이?
난 고개를 떨군 채 선전을 하고 있어
내 영혼을 사거나 임대해 가라고
내겐 이제 심장도 없고, 속은 싸늘하기만 해
내겐 이제 아무런 삶의 의지도 없어
날 구해줘 날 구해줘 날 구해줘
나 혼자서는 이 삶을 살아갈 수 없어
날 구해줘 날 구해줘 오...
난 빈 몸뚱이에 집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
매일 밤 울면서 나 아직도 그 거짓말 믿고 있어
죽을 때까지 당신을 사랑한다던 그 거짓말을
날 구해줘 날 구해줘 날 구해줘
나 혼자서는 이 삶을 살아갈 수 없어
날 구해줘 날 구해줘 오...
난 빈 몸뚱이에 집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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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 내겐 이제 심장도 없고 속은 싸늘하기만 해. 내겐 이제 삶의 의지도 없어. 당신 없이 혼자선 살아갈 수 없어. 제발 날 좀 구해 줘. 날 좀 구해 줘." Queen의 대표곡 중 하나인 We Will Rock You를 만들었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May)가 만든 곡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의 허탈감, 박탈감, 절망감 등을 노래하고 있다. 1980년에 발매된 앨범 The Game에 마지막 곡으로 수록됐던 곡.
■ 영국의 4인조 록 밴드. 브라이언 메이, 프레디 머큐리, 존 디콘, 로저 테일러로 구성되었으며, 폭 넓은 록 음악을 연주하여 1970년대를 대표하는 록 밴드로 명성을 날렸다. <보헤미안 랩소디>, <위 아 더 챔피언>,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위 윌 록 유> 등 많은 곡을 발표했으며,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18년 그래미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 개요
1970년대를 풍미한 영국의 록 그룹.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기타와 보컬을 담당),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보컬과 피아노, 키보드 담당), 존 디콘(John Deacon, 베이스 담당), 로저 테일러(Roger Taylor, 드럼과 보컬 담당)로 구성되었다. 개성이 강한 멤버들의 취향과 상상력에 따라 록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적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대중과의 교감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세대를 초월하는 전설적인 명성을 얻었다.
■ 활동 전사
퀸의 결성 전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브라이언 메이였다. 1968년 영국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오브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의 천체물리학 전공 학생이던 브라이언 메이와 팀 스타펠(Tim Staffel), 런던의과대학(London Hospital Medical College)의 치과 전공 학생 로저 테일러가 '스마일(Smile)'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했다. 그들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나 예스(Yes)와 같은 당대의 유명한 밴드들의 콘서트에 참여하면서 서서히 록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69년 베이스와 보컬을 맡았던 팀 스타펠의 소개로 일링 아트 칼리지(Ealing Art College)의 디자인 전공 학생이던 프레드릭 벌사라(Frederick Bulsara)가 이들의 밴드에 비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프레드릭 벌사라는 영국 식민지 잔지바르 출신의 인도인으로, 페르시아인의 후손이며 원래 이름은 인도식인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였으나 이 해 학교를 졸업하면서 영국식 이름인 '프레드릭 벌사라'로 개명을 한 상황이었다.
■ 퀸 결성
스마일과 계약을 맺고 후원하던 제작사인 머큐리 레코드가 미국과 영국에서 음반을 준비하는 사이에, 팀 스타펠이 스마일을 탈퇴하고 험피 봉(Humpy Bong)이라는 밴드로 이적했다. 이에 따라 스마일과 머큐리 레코드와의 계약이 파기되었다. 스마일은 프레드릭 벌사라를 정규 멤버로 영입했고, 프레드릭 벌사라의 제안에 따라 밴드의 이름을 '퀸'으로 변경했다. 퀸은 1971년 팀 스타펠의 탈퇴로 비어 있던 베이시스트 자리에 존 디콘을 영입하면서 이후 계속되는 퀸의 멤버가 완성되었다. 프레드릭 벌사라는 퀸 활동을 하면서 프레드릭의 애칭인 '프레디'를 딴 '프레디 머큐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 초기 활동
퀸은 초기에 순회 연주와 대학 공연 등을 다니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트라이던트 사와 계약을 맺고 1973년 1집 앨범<퀸(Queen)>을 출반했다. 일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기는 했으나 퀸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은 미미했다. 1974년에는 2집 앨범 <퀸2(Queen II)>를 출반했으나 역시 큰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같은 해에 출반한 싱글 <킬러 퀸(Killer Queen)>과 3집 앨범 <시어 하트 어택(Sheer Heart Attack)>이 상업적인 성공을 얻으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명성이 올라가면서 불공정 계약에 가까웠던 트라이던트 사와 갈등이 촉발되었고, 곧 이 계약은 파기되었다. 퀸은 존 리드(John Reid)와의 협상 끝에 대형 음반사였던 EMI와 전속 계약을 맺게 되었다.
■ 전성기
1975년 EMI에서 출반한 4집 앨범 <오페라의 밤(A Night at the Opera)>을 준비하면서 퀸은 자신들이 하는 록 음악 자체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특히 프레디 머큐리는 이 무렵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음악적 원천에 대한 고민에 깊이 빠져 있는 중이었다. 그는 그의 내적 갈등을 클래식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와 기법의 추구를 통해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발표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6분에 걸쳐 아카펠라와 발라드, 오페라, 록 등 다양한 장르가 교차되는 대곡이어서 출반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곧 영국 음반 순위 1위, 미국 빌보드 차트 9위에 오르면서 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선사했다.
이듬해 펴낸 5집 앨범 <경마장에서의 하루(A Day at the Races)>는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 등의 수록곡을 바탕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4집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혹평을 내리기도 했다. 1977년은 퀸에게 있어 대중적 인기의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한 해였다. 이들은 6집 앨범 <세계의 뉴스(News of the World)>를 펴냈는데, 이 음반에 수록한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와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은 록 음악이 어떻게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곡들로, 이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퀸에 대한 세대를 초월하는 대중적 인기의 바탕이 되었다.
■ 후기 활동
퀸은 1978년 7집 앨범 <재즈(Jazz)>를 펴냈으며, 여전한 평론가들의 냉정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명성을 유지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록과 대중성의 경계를 오가는 음악적인 실험을 계속했다. 1980년 8집 앨범 <더 게임(The Game)>은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같은 해 영화 <플래시 고든>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9집 앨범으로 펴냈으며, 1982년에는 10집 앨범 <핫 스페이스(Hot Space)>를 출반했다. 1984년 11집 앨범 <작업들(The Works )>가 출반되었다. 첫번째 수록곡인 <라디오 가가(Radio Ga Ga)>가 인기를 끌기는 했으나 이후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들을 하는 등 밴드에 충실하지 않았으며 밴드로서는 거의 휴지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던 퀸은 1985년 7월 13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에디오피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자선 공연에서 열연을 보이면서 다시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당시 이 공연은 위성으로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 중계되었으며 약 19억 명의 시청자가 시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프레디 머큐리는 퀸에게 할당된 20여 분 동안 웸블리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대중들을 감동시키는 카리스마적인 퍼포먼스로 퀸의 존재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이 무렵부터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소문이 이미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었다.
1989년 13집 앨범 <기적(The Miracle)>이, 1991년에는 14집 앨범 <풍자(Innuendo)>가 출반되었으나, 대외 활동이 줄어들고 급격하게 초췌해진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이 보도되면서 퀸은 다른 의미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결국 1991년 11월 24일 사망했다. 그 전날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비로소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었다. 퀸의 대표적인 퍼포먼스를 담당하는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자 퀸의 명성은 곧 전설로 바뀌었다. 나머지 멤버는 퀸의 이름을 유지하면서 공연을 계속했으며, 1995년에는 프레디 머큐리의 생전 녹음이 포함된 앨범 <천국에서 만듬(Made in Heaven)>을 출반했다. 1997년에는 존 디콘이 은퇴했다.
■ 현황
존 디콘의 은퇴 후에도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는 다른 음악가들과 협력하면서 퀸의 활동을 계속했다. 이들은 뮤지컬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를 제작했고, 폴 로저스, 아담 램버트 등과 순회 공연을 하기도 했다. 특히 퀸을 주도했던 브라이언 메이는 퀸과 관련한 모든 앨범의 출반, 공연 등을 주관하거나 관여하면서 퀸의 명성을 이었다. 2018년에는 웸블리 스타디움의 자선 공연까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퀸의 명성을 재확인시켰다.
■ 영향과 평가
퀸의 음악은 개성이 강하며 서로 다른 음악적 취향을 가진 멤버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하드 록에서부터, 팝, 포크송, 오페라, 디스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상상력과 조합, 대중과 교감하는 뛰어난 퍼포먼스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록의 계보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평론가들에게서는 활동기간 내내 상당히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특정 장르에 안주하지 않는 퀸의 실험적이며 파격적인 음악세계는 이후 각국의 많은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특히 공연 중에 관객과 교감하는 뛰어난 무대 퍼포먼스의 능력은 음악뿐 아니라 종합적인 대중예술의 한계를 넓혀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퀸은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18년 2월에는 음반 분야에서 뛰어난 예술적 가치와 창조적인 공헌을 일생 동안 보여준 음악가에게 수여하는 그래미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음악 > pop,상송,칸소네 外'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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