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대중가요,가곡

우리는 하나 - 정훈희 김태화

청가헌 (聽可軒) 2022. 9. 9. 08:38

우리는 하나 / 정훈희 김태화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낯 익은 당신의 모습이
내게 눈부신 햇살을 미소로 뿌려 주네

깊은 밤 눈을 감을 땐
따스한 당신의 입술이
지쳐 숨죽은 이 몸을 꿈 길로 끌어 주네

기쁠 땐 기쁨을 하나로
슬플 땐 슬픔을 하나로
함께 하는 길 행복하여라

당신이 곁에 있으니(언제나 내겐 당신 뿐)
아무런 두려움 없어요(우리는 하나)
어떤(언제까지)욕심도 없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기쁠 땐 기쁨을 하나로
슬플 땐 슬픔을 하나로
함께 하는 길 행복하여 라

당신이 곁에 있으니(언제나 내겐 당신 뿐)
아무런 두려움 없어요(우리는 하나)
어떤(언제까지)욕심도 없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당신을)너무나 (너무나)사랑해요

 

김태화

  • 출생   1950년 10월 4일 서울특별시
  • 거주지   경기도 고양시
  • 배우자   정훈희
  • 가족   정근수 (장인어른),김유성 (큰아들),김진성 (작은아들),조카 제이
  • 종교   개신교

생애

1970년대부터 활동하였다. 8군에서 주로 활약했던 '라스트찬스'(김태일, 나원탁, 곽효성, 이순남, 김태화)라는 그룹 사운드의 보컬을 담당했던 김태화는 단발령 등으로 인해 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놀라운 가창력으로 데블스와 함께 당시의 그룹 사운드계를 평정했었다. 그의 독집 앨범은 1980년에 처음 발표되었는데, 이 앨범에 그의 명곡 "안녕"이 실려 있다. 당시 출반된 음반의 B면 세 번째 곡으로 실린 것으로 히트를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노래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후 조영남, 이선희 등 여러 가수들이 다시 불러서 일반에게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노래는 '사랑과 평화'가 불러서 힛트한 "한동안 뜸했었지", "어머님의 자장가", "장미" 등과 같이 모두 이장희가 만든 곡이다. 앨범 재킷에는 이경애 작사, 김이환 작곡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활동규제에 묶여 있던 이장희가 썼던 다른 이름들이다.

정훈희

출생1951511일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거주지경기도 고양시

학력아미초등학교 (졸업),부산여자중학교 (졸업),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가족배우자 김태화,아들 김유진, 김진성

데뷔1967년 노래 '안개'

장르발라드

종교개신교

생애

정훈희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정근수와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 기타리스트인 큰 오빠 정희택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수 김태화의 부인이고 가수 J.ae의 고모이다.

당대 최고 작곡가 이봉조 와 인연으로 곡 <안개>를 받아 196717세의 나이로 1집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입문하였다. 고교 1학년이었던 67년 당시 방학을 맞은 정훈희는 서울 그랜드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이트 클럽 밴드 마스터였던 삼촌을 따라와 연습삼아 몇 곡을 흥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이봉조가 들어왔다. 나이트 클럽 옆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그는 정훈희의 목소리를 듣고 필이 꽂혀단숨에 달려와서 이렇게 말했다. “쪼맨한(조그마한) 가시나가 건방지게 노래 잘 하네.” 당시 이봉조는 안개를 만들어놓고 자신의 색소폰 연주로 취입한 상태였는데 그 노래에 맞는 목소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정훈희-이봉조 콤비는 이렇게 이뤄졌다고 한다.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가수상을 받았고 ABBA는 상도못받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듬해 아테네국제가요제에서는 곡 로써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수상했다. 1975년 칠레 가요제에서는 곡 무인도로서 3위 상과 최고 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1975,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었다. 곧 훈방되었지만, 방송 출연을 정지당한다.

정훈희의 주장에 따르면 그냥 담배를 피웠던 것인데, 명백한 증거도 없이 대마초 혐의가 씌워졌다고 한다.링크 지금처럼 모발 검사 같은 조사를 했던 시절이 아니라서 의혹만으로 혐의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시대 분위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마초는 대한민국에서 금기가 아니었으며, 시골에서는 약으로 쓰이기도 했었다. 당연히 상당수의 가수들이 담배처럼 대마초를 피워 왔으나, 1993년에 갑자기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던 것이고, 그런 분위기로 인해 애연가인 정훈희까지 대마를 피운다는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1979년 제20회 칠레가요제에 다시 출전한 정훈희/이봉조 콤비는 이종택이 작사한 꽃밭에서를 스페인어로 번안한 < Un Día Hermoso Como Hoy 오늘처럼 아름다운 날을 불러서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다. 당국에서는 국위를 선양한 대마초 연예인에 대해서는 선처를 베풀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고, 정훈희의 칠레가요제 실황 필름은 전국에 방송되었다. 자신은 대마초를 피운 사실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 유일하게 훈방으로 나왔지만 대마초 가수라는 낙인으로 인해 더이상 활동하기가 어려웠다.

81년 규제가 풀리고, 그녀는 재기 무대가 순탄하지 못했으나 이후 88년 발표된 곡 꽃밭에서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후 가수 김태화와 결혼한다. 임신한 상태로 앨범 우리는 하나를 남편과 녹음하기도 했다. 그 것을 빼고는 정규음반은 내지 않았다. 죽기 살기로 노래해도 사소한 것으로 버림받는다는 좌절감과 섭섭함때문이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하였다.

30여 년만인 2008, 데뷔 40주년 기념음반40th Anniversary Celebrations을 발매하였다.

 

현재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임랑해수욕장에서 남편과 함께 라이브카페 '정훈희와 김태화의 꽃밭에서'를 운영중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현재 주말만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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