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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lques Larmes De Pluie - Dalida ★★★

청가헌 (聽可軒) 2022. 2. 26. 19:11

Quelques Larmes De Pluie / Dalida   ('Rain and Tears')

J'ai connu un pays
Ou le soleil a disparu du monde
Aujourd'hui c'est la pluie
Que pleure le ciel
Tant sa peine est profonde

Mon coeur s'est endormi
Pour quelques larmes de pluie
J'ai connu un pays
Ou le soleil a disparu du monde

- musique -

Mon cœur s'est endormi
Pour quelques larmes de pluie
J'ai connu une enfant
Dont les amours se voulaient loin du monde

Et depuis tout ce temps
Je vois mon ciel noye de plages blondes
J'ai connu un pays
Ou le soleil a disparu du monde

빗물과 눈물은 같아 보여요
하지만 햇살이 비치는 날에는
눈물을 빗물인 것처럼 속일 순 없어요
마음에 상처를 입고 당신이 눈물 흘릴 때
그것이 단지 빗물일 뿐이라고
그런 척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 동안 당신의 푸른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수없이 봐 왔어요
빗물과 눈물은 같아 보여요
하지만 햇살이 비치는 날에도
눈물을 빗물인 척 속일 순 없어요

나를 사랑의 눈길로 봐주세요
이제 난 사랑이 뭔지 알고 싶어요
이렇게 햇살이 비치는 날의 빗물과 눈물
당신은 당신의 가슴 속에서
무지개빛 물결을 느끼죠
빗물과 눈물은 같아 보여요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희망이 보일 것 같지가 않아요

빗물과 눈물은 같아요
하지만 햇살 아래에선
당신은 흐르는 눈물을
빗물이라고 할 수 없어요.
 

1933년 이집트 카이로의 이탈리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Cairo Opera House)의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일찍부터 음악을 접했다. 1950년 지역 미인 대회인 미스 온딘(Miss Ondine)에 출전해 우승했고, 곧바로 카이로의 패션 센터 도나(Donna)에서 모델로 일했다.

 

1954년 이집트 최고의 미인대회인 미스 이집트(Miss Egypt)에서 미스 이집트로 뽑혔다. 그해 오마 샤리프(Omar Sharif) 주연의 영화 조제프 에 세 프레르(Joseph Et Ses Frères)에 캐스팅되며 배우로 데뷔했고, 이후 십 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54년 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샹젤리제거리에 위치한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올랭피아(Olympia) 극장의 소유주 브뤼노 코카트릭스(Bruno Coquatrix),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 유럽 1(Europe 1)의 제작자 뤼시엥 모리스(Lucien Morisse), 음반사 바클레이 레코즈(Barclay Records)의 대표 에디 바클레이(Eddie Barclay)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다.

 

1956년 데뷔싱글 <마돈나(Madona)>를 발표하며 음반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발표한 싱글 <밤비노>(1957년 기준) 프랑스에서 3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의 올랭피아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1950년 후반 <곤돌리에(Gondolier)>(1957), <코메 프리마 (튀 므 돈느)(Come Prima (Tu Me Donnes))>(1958), <차오, 차오 밤비나 (피오베)(Ciao, Ciao Bambina (Piove))>(1959)를 히트시켰다. 또한 1958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 이집트, 이탈리아, 미국에서 콘서트를 펼쳤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의 보컬 그룹 드리프터스(The Drifters)<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포 미(Save The Last Dance For Me)>와 미국의 포크 가수 피트 시거(Pete Seeger)<웨어 해브 올 더 플라워스 곤?(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을 각각 프랑스어로 개사해 부른 <가르드 무아 라 데르니에르 당스(Garde-Moi La Dernière Danse)>(1961)<크 송 드브뉘 레 플뢰르?(Que Sont Devenues Les Fleurs?)>(1962)를 히트시켰다.

 

1965년 그리스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가 음악을 맡은 영화 희랍인 조르바(Alexis Zorbas)의 테마음악에 노랫말을 붙여 노래한 <라 당스 드 조르바(La Danse De Zorba)>를 히트시켰다.

 

19671월 당시 연인 관계였던 이탈리아의 신예 싱어송라이터 루이지 텐코(Luigi Tenco)와 함께 제17회 이탈리아 산레모 가요제(San Remo Festival)에 출전해 루이지 텐코가 작곡한 노래 <차오 아모레 차오(Ciao Amore Ciao)>를 함께 불렀다. 그러나 산레모 가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것에 비관해 루이지 텐코가 1967127일 호텔 방에서 자살하자 큰 충격을 받았고, 한 달 후 자신도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1967105일 올랭피아에서 재기 무대를 가졌고, 1970년 그리스 칼림노스섬(Kalymnos Island)의 민요를 새롭게 재해석한 <달라 딜라다다(Darla Dirladada)>를 히트시켰다. 그러나 19709월 전() 남편이자 매니저였던 뤼시엥 모리스 역시 자살을 하면서 다시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에도 주변 인물들의 자살이 이어져 활동기간 내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1973년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과 함께 부른 듀엣곡 <파롤 파롤>(1973년 프랑스 싱글차트 1)을 히트시켰다. 1970년대 후반까지 <지지 라모르소(Gigi L'amoroso)>(1974), <일 브네 다부아 디즈위트 앙(Il Venait D'avoir 18 Ans)>(1974), 디스코 스타일의 <자탕드레(J'attendrai)>(1975), 이집트 민요를 재해석한 <살마 야 살라마>(1977)와 같은 노래를 히트시켰다.

 

197811월 미국 뉴욕의 카네기 홀 무대에 섰고, 1980년대 중반까지 <제네라숑 78(Génération 78)>(1978), <헬와 야 발라디(Helwa Ya Balady)>(1979), <무리르 쉬르 센느(Mourir Sur Scène)>(1983) 등의 대표곡을 남겼다.

 

1986년 유세프 샤힌(Youssef Chahine) 감독의 이집트 영화 르 시지엠므 주르(Le Sixième Jour)에 출연했고, 1987년 초 터키 앙카라(Ankara)에서 라이브 무대를 펼쳤다. 그러나 깊은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198753일 파리 몽마르트르의 자택에서 인생은 너무 견디기 힘들어요. 날 용서해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달리다는 샹송 발전에 기여한 것은 물론, 이탈리아어, 아랍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독일어 등 10 여 개 국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며 월드뮤직 대중화에도 이바지했다. 대표곡으로 <밤비노>, <파롤 파롤>, <지지 라모르소>, <살마 야 살라마>, <무리르 쉬르 센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