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당신 곁으로 / 민해경
당신의 빛나던 눈동자 위엔
흐르는 한줄기 눈물때문에
이 마음 차가운 바람불어와
떨어진 낙엽이 되었네
잊으려 잊으려 애를 써봐도
당신의 따뜻한 미소때문에
이마음 영원히 함께 타오른
사랑의 촛불이되었네
바람불어와 내몸이 날려도
당신때문에 외로운 내마음
모든것이 다 지나가버려도
내마음은 당신곁으로
<간주중>
당신은 너무나 사랑했기에
수많은 미련이 나를 잡지만
이제는 영원히 잡을수없는
지나간 추억이 되었네
바람불어와 내몸이 날려도
당신때문에 외로운 내마음
모든것이 다 지나가버려도
내마음은 당신곁으로
바람불어와 내몸이 날려도
당신때문에 외로운 내마음
모든것이 다 지나가버려도
내마음은 당신곁으로
바람불어와 내몸이 날려도
당신때문에 외로운 내마음
모든것이 다 지나가버려도
내마음은 당신곁으로 .
민해경(閔海景, 1962년 4월 18일 ~ )은
◉신체 161cm, 45kg, O형
◉종교 개신교
1962년 4월 18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출생이며 본명은 '백미경'(白美瓊)이며 아명(兒名)은 '백해경'(白海瓊)이다. 국악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79년 경기도 인천시 국악경연대회에서 고전무용으로 입상한 경력이 있고 이듬해 1980년 TBC 동양방송에서 주최한 제2회 'TBC세계가요제' 국내예선전에서 《누구의 노래일까》로 참가해 데뷔했다.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다음해인 1981년 정규 데뷔 앨범인 제1집 《누구의 노래일까》을 발표하여 그해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여자부분신인상을 수상했으며, 1983년 제1회 미국LA세계가요제에서 《그대는 나그네》란 곡으로 그랑프리와 최우수가창상을 수상했다.
1983년에 유흥주점 출입 문제로 방송 출연 금지 조치가 내려지자 일본에서 활동하였다.[1] 이후 1986년 초에 귀국하여 활동을 재개하였다. 1990년 제10회 ABU국제가요제에서 《보고 싶은 얼굴》로 한국가수로는 최초로 대상인 최우수가수상을 수상하였다.
1987년 이후로는 댄스 팝 가수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그대 모습은 장미》, 《보고 싶은 얼굴》 등 다수의 히트곡이 있다 1986년터 1991년까지 골든디스크상 6회 수상을 했다. 한때 1993년 SBS에도 1편 출연하였고 이듬해 1994년 뮤지컬 《광개토대왕》에서 말갈 공주 역으로 연기하기도 하였다.
2011년에는 이치현, 강인원, 권인하 등과 함께 프로젝트 보컬 음악 그룹 컬러스(the Colors)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2013년에 11년만에 새 정규앨범 Balance를 발표하였으며, 2017년 정규앨범 'WE LOVE YOU' 싱글앨범으로 활동하였다. 2020년 1월 KBS 2TV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레전드 특집'에서 최종 우승을 하기도 하였다.
■ 학력
서울구로남초등학교 졸업 (1975년)
대방여자중학교 졸업 (1978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 (1981년)
■ 활동
1980년 TBC(동양방송)에서 주최한 제2회 서울국제가요제 국내예선전에서 "누구의 노래일까" 라는 곡으로 데뷔했으며 비록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 해에 앨범을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곧이어 발표한 서정적인 발라드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 해 연말 10대 가수에 선정되는 등 신인급 가수임에도 준수한 성과를 거두고, 1983년에는 김현준과 듀엣으로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곡을 발표하며 인기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83년에 요정출입 스캔들이 터져서 방송출연 금지 조치 등으로 발이 묶이는 바람에 한동안 일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지 민해경은 일본어에 꽤 능한 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기대했던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며, 마침 출연금지 조치가 해제될 시점인 1986년 귀국했다. 그 뒤 복귀작에 수록된 "사랑은 이제 그만"이 당시 가요톱10 1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으며 성공적으로 국내 활동을 재개했다. 당시에 일본에서 녹음 작업을 해 온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초창기 민해경의 곡들은 성인 취향의 서정적인 발라드가 주를 이루었으나, "사랑은 이제 그만"의 히트를 시작으로 댄스가수로서 전향하게 된다.
이후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그대 모습은 장미", "보고 싶은 얼굴", "미니스커트"[7] 등의 히트곡을 연달아 발표하며 이국적인 마스크와 시원스러운 가창력, 화려한 무대 매너와 패션감각 등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 많은 인기를 얻었다. 당시 별명은 왕눈이. 선배 가수인 하춘화와 비슷한 외모이다.
이후에는 성인가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출연하면서 방송활동을 계속했다. 2013년에는 정규 17집 앨범 "The Balance"를 발표했고, 2017년 싱글 "WE LOVE YOU" 를 발표했다. 가창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참고로 1995년에 5살 연하와 결혼을 했는데, 너무 조용히 해서 결혼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후 1997년에 딸을 낳았다.
■ 여담
'내 인생은 나의 것'이란 노래가 발표와 동시에 가요톱텐에서 4주 1위를 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지만 가사를 본 부모들의 반대로 인해 금지곡에 지정된 이야기를 2016년 2월 27일 불후의 명곡에서 밝힌 바 있다.
웃기게도 젊은 시절에는 코미디언 김미화와 똑같이 생겨서 김미화가 민해경의 노래로 공연을 하는 개그를 치기도 했다. 다만 현재는 늙는 속도의 차이가 심해서 완전 다른 얼굴이 되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민해경쪽이 훨씬 노안인데 지금은 민해경의 경우 김미화와 다르게 거의 늙지를 않아서...
가요계 군기반장을 맡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민해경은 이 사실을 일축했다. 민해경의 눈매가 쌀쌀맞아서 벌어진 오해라고 한다.
민중당 지지자였다고 한다. 진보된 여성정책에 끌렸다고 한다. 그래서 1991년 무료로 민중당이 개최한 디너쇼에 출연해서 디너쇼 수익금 전액 민중당에 기부했었다고 한다. 이 기획은 당시 사무총장이던 이재오의 작품이다.
하지만 동시에 신한국당 이명박 총선 유세에 지지발언을 짧게 하기도 했다. 당시 임채무, 이경규 사회에 정수라, 김해숙 등과 함께였는데 마침 이재오, 김문수가 신한국당에 입당한 정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친분이나 단순 동원 수준으로 보인다. 불과 5년 사이 선거법에서 공연이 불가능해진 이유도 있었다. 애초에 80년대 활동한 가수라면 다 아는 사람들이구만 수준이라...
1991년 일본의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화보집인 산타페의 발표 이후 유연실과 민해경도 각각 누드집을 발간하였다. 각각 유연실은 '이브의 초상' 그리고 '유연실의 영상고백', 민해경은 'Return To Eden' 이라는 영상집으로 등장했는데, 현재는 둘 다 구하기 어렵고, 발표 당시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당사자에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배우 나영희와 초등학교 동창이다.
오빠인 백강기는 그룹 부활을 탄생시킨 프로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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