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 송골매 (배철수)
돌아선 그대 등에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이가슴 저리도록 흐르는 눈물 눈물
초라한 그대 모습 꿈속이라도
따스한 물가에서 쉬어 가소서
그대 몰래 소리없이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끝없이 솟아나는 차가운 눈물
말없이 그대 등에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이 가슴 애타도록 흐르는 눈물눈물
초라한 그대 모습 떠날지라도
따스한 사랑으로 감싸오리다
그대 몰래 소리없이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끝없이 솟아나는 차가운 눈물
우--- 아---
- 장르 하드 록, 뉴웨이브
- 활동 1979년 ~ 1991년
- 구성원
배철수, 김정선, 이봉환, 이태윤, 이건태, 이종욱
- 이전 구성원
오승동, 김상복, 구창모, 지덕엽, 이응수
■당대 최고의 대학교 캠퍼스 밴드였던 활주 출신의 배철수를 중심으로 1979년 결성되었고 1978년 제 2회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던 배철수(활주로 6기), 지덕엽(활주로 9기)와 베이시스트 이응수(활주로 8기)와 키보드의 이봉환을 영입하여 시작되었다.
송골매라는 이름은 한국항공대학교의 교조에서 따왔다.
대표곡으로, '모두 다 사랑하리', '세상만사','하늘나라 우리 님', '모여라' 등이 유명하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반 한국의 청년문화는 1975년 대마초 파동 이후 가요 대탄압으로 인해 전부 싹이 잘려 나갔다. 그래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팝송을 들으며 음악적인 갈증을 해갈했고,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그룹사운드가 성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산울림, 송골매 같은 밴드들은 한국식 록음악을 본격적으로 선보였고, 이들은 당대 최고의 스타 가수 대접을 받았다. 즉, 한국 록 음악의 암흑기 때를 대표하는 인기 밴드였다.
1979년에 발매한 송골매 1집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1981년에 지덕엽의 군 입대와 이응수의 학업 문제로 탈퇴하여,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에 배철수는 평소에 알고지내던 블랙테트라 2기 보컬 구창모와 기타리스트 김정선[4]에게 전화를 하고 그 두사람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오색약수터라는 암자로 이봉환과 같이 찾아 가서 팀을 같이 하자고 제의하였다.
이 제의에 합의가 되어 배철수(보컬, 드럼), 이봉환(키보드), 구창모(보컬, 베이스), 김정선(기타) 이렇게 4인의 멤버로 클럽 등을 돌며 라이브 공연 위주로 활동하면서 2집 녹음을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배철수의 생각에는 뭔가 모자란 부분이 있어 당시 군복무를 하던 오승동을 섭외했고,[6] 오승동의 친구였던 김상복(베이스)까지 영입하였다.
그 결과 기타와 보컬의 배철수, 리드보컬 구창모, 기타의 김정선, 베이스의 김상복, 드럼의 오승동, 키보드의 이봉환이라는 라인업으로 1981년에 발표한 송골매 2집은 송골매의 침체기를 한번에 뒤집어 버린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 곡은 전체적으로 1970년대 미국에서 인기 있었던 디스코에 Funk rock 적인 부분을 결합한 음악이다. 처음의 기타 리프는 1971년 빌보드 1위를 차지했던 Isaac Hayes의 "Theme From Shaft"를 연상시킨다. 이때 한국에서 흑인 음악을 하는 이들이 극히 적었음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Funk를 기반으로 한 디스코-락 넘버를 히트한다는 것은 대단하다. 1982년 당시 한국에서 흑인 음악을 소개하고 히트시키던 아티스트는 송골매와 조용필밖에 없다. 사랑과 평화는 1979년의 잠깐 히트로 끝났고, 조용필은 4집에서 자존심, 못찾겠다 꾀꼬리 등의 흑인 음악 스타일의 곡들을 히트시킨 바 있다.
1983년에 발표한 송골매 3집은 전작에서의 인기를 또 한번 실감하듯 '처음 본 순간' 과 '아가에게' 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담으로, 1983년 젊음의 행진에서 무대를 펼칠 때 배철수 인생의 마지막 무대가 될 뻔했던 위험한 방송사고가 있었다. 자세한 사항은 이 항목 참고.
1980년대 초반 송골매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송골매를 주연으로 한 영화가 줄줄이 개봉되었을 정도였다. 1982년작 "갈채",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1983)
그러나 1984년 당시 기획자로부터 솔로 가수 제의를 받은 구창모가 탈퇴하면서 4집활동에 적신호가 켜진다. 이후 송골매의 리드보컬은 배철수가 맡게 된다. 4집에서 히트곡이었던 "난 정말 모르겠네"는 당시 영미권에서 유행하던 뉴웨이브 사운드의 곡이다. 듀란 듀란이나 컬처 클럽 등의 뉴웨이브/신스팝 사운드가 아니라, Go Go's나 Men At Work와 같은 뉴웨이브/Pop rock 계열의 스타일이다. 1982~1983년에 영미권에서 인기가 많았던 시운드이다. 그 당시만 해도 신스팝 계열과 Pop rock 계열의 뉴웨이브가 공존하던 과도기적 시대였다. 실제로 기타 리프와 곡 분위기가 초기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호주 뉴웨이브 밴드 "Men At Work"와 흡사하며, Go Go's의 밝은 뉴웨이브 분위기도 든다. 198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락 밴드 "Huey Lewis & The News"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1984년 당시 기준으로 꽤 트렌디한 뉴웨이브 곡이다.
1985년에 발표한 송골매 5집은 라원주, 이응수의 지원을 받아 '하늘나라 우리님'이 「가요톱10」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송골매의 사실상 마지막 전성기에 깃발을 꽂았다.
1986년에 발표한 송골매 6집은 특별한 히트곡이 없었는데 1986년은 백두산, 시나위, 부활이 데뷔를 한 해이고 헤비메탈 의 르네상스였던 시기이기에 큰 빛을 보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부진과 음악적 갈등으로, 2집 때 영입했던 김상복(베이스)과 오승동(드럼)이 팀을 떠나게 되었고, 그러자 배철수는 노래라면 몰라도 연주에서 만큼은 최고의 밴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종욱(키보드), 이태윤(베이스), 이건태(드럼)[10]를 영입하게 된다.
멤버 재편 후 발표한 7집에서는 '새가 되어 날으리'가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다.
1988년 5월에 8집 앨범을 발매하였다. 그러나 이미 송골매가 더 이상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태윤이 부른 “외로운 들꽃”이 히트되어 송골매의 체면을 살려 줄 수가 있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1년 동안 KBS에서 방영했던 '자니 윤 쇼'에서 하우스 밴드를 맡았다. 이는 88 올림픽 메인광장에서 개최된 외국 선수들을 위한 이벤트에 송골먀가 출연하여 연주를 할 때 쟈니윤과의 첫 만남에서 나중에 쟈니 윤이 토크쇼를 하게되면 음악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990년에 발표한 마지막 앨범 9집에서는 '모여라'라는 히트곡을 냈다. Huey Lewis & The News 풍의 블루스 록과 뉴웨이브를 기반으로 한 팝 록 사운드이다. 중간의 기타 솔로는 1980년대 중후반의 글램 메탈을 연상시킨다.
이후 송골매의 프론트맨이었던 배철수가 본격적으로 라디오 DJ를 맡게되고, 뮤지션으로서의 행보를 접으면서 밴드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배철수의 언급에 따르면 당시 생활과 창작이 양립이 되지 않는 아이러니에 직면해 있었다고 한다. 방송 무대를 나가야 홍보가 되고 몸값이 올라가고, 또 그 홍보와 몸값을 바탕으로 밤무대를 뛰어야 밴드 생활이 유지되고... 그런데 그렇게 365일 밤무대를 뛰다 보면 연구를 할 시간도 적고 새로운 영감과 창작력 역시 솟지 않는다고 한다.
2022년 하반기(9월 11일~12일) 양일 간 서울 콘서트를 시작으로 '열망'이라는 타이틀의 전국 투어를 예고하였다. 38년 만에 구창모가 재합류했으며, 베이시스트 이태윤이 음악감독을 맡는다. 송골매의 오랜 팬들은 물론이요 한국 대중 음악에 관심이 지대한 이들에게까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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